대중은 현재를 고민하고 리더는 미래를 고민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리더들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다.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된 이후 50년 넘게 다른 선진국들의 과거가 우리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도달했지만, 과거의 관성이 남아 있어 여전히 미래는 뒷전에 밀려나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독수리와 용의 대결이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반도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현재도 국제정세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가깝게는 한반도의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은 새롭게 등장한 사회주의 세력의 맏형 소련과 역시 영국을 제치고 자본주의 세력의 맏형이 된 미국의 힘겨루기, 대결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국제정세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더 뒤로 가면 조선 말의 쇄국정책은 결국 조선의 멸망과 일본의 침략으로 이어졌다. 서양의 산업자본주의를 먼저 도입한 일본이 식민지를 필요로 한다는 제국주의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국과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중국의 개혁개방 이면에는 미국의 소련 봉쇄정책이 있다. 중국은 소련과 거리를 두는 대가로 미국의 경제협력과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다. 소련은 미국과의 군비경쟁에 말려들어 경제가 파탄 나고 결국 붕괴했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 중국 때문에 미국 자본은 투자 이득을, 미국 대중은 싼 공산품을 쓰는 이득을 얻었다. 그런데 중국이 이제는 세계의 제조공장에서 벗어나 선진경제대국이 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기, 혼돈의 시기에 기회를 잡아 도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과 아시아는 1, 2차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뒤쳐져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지도 몰라서 아편전쟁과 식민지가 되는 굴욕을 겪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라는 것은 선진국의 1, 2차 산업혁명의 철 지난 공장, 오염산업을 이전 받는 것이었으며, 선진국들은 3차 산업혁명, 즉 ICT 산업으로 옮겨갔다. 그런 중에 20여년 전 인터넷이 등장할 때 중국의 한 작은 기업이 인터넷 상거래를 따라 한 것이 알리바바라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지금은 알다시피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한편으로 빅데이터라는 원료를 필요로 하는데 많은 인구만큼 많은 데이터는 중국이 인공지능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 이미 AI 기술 수준이 미국 다음이고 5G 통신기술도 이미 선두 그룹에 도달한 이 기회를 중국 정부는 적극 활용하려고 한다. 이것이 최근 미중 무역 갈등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국 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 사회주의 강국이 된다는 중국몽을 표방하였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았었다. 단순히 인구수와 경제 규모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중국이 비로서 선진국들과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중국의 기술 탈취, 저작권 침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지식생태계와 거리를 두고 중국의 과학기술력이 독자적으로 어느 정도로 성장할 것인가도 변수이다.
또 하나는 중국 인민의 민족주의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아편전쟁은 중화민족의 위대함이 짓밟힌 사건이다. 대국굴기라는 중국의 동력에는 이런 치욕을 극복하자는 민족적 정서가 깔려 있다. 경제력이 커지면서 이런 민족의식은 더 강해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개발독재를 용인했듯이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지도를 따르는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국민소득의 향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동시에 키운다. 이는 중국 정치체제의 민주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개발독재에서 민간시장 경쟁으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 부분에서 공산당을 강화하려는 중국 때리기로 일치를 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서 소련의 붕괴와 대입되지는 않겠지만, 커다란 도전이라고 본다.
이제 시각을 한반도로 돌려보자.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커질수록 미국은 북한을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하여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고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을까? 미중 경쟁 악화가 한반도의 경제와 통일에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국제정세의 장기적 변화 전망 속에서 미리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남북한의 고민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