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삼성,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공룡들의 암호화폐 시장 진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디지털자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우선 암호화폐를 둘러싼 플랫폼이 첫번째 전쟁터가 될 전망이다.
10일 블록체인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홈페이지에서 애플 OS(운영체제)를 활용하는 개발자들이 암호화 작업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레임워크인 '크립토키트'를 공개했다.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크립토키트를 이용해 아이폰에 탑재될 새로운 OS인 iOS13을 기반으로 키 생성, 암호화 등 다양한 서비스 구축을 위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는 아이폰 내에 암호화폐 지갑 탑재를 위한 사용자들 키를 관리할 수 있는 초기 환경을 구축한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애플의 글로벌 맞수인 삼성의 움직임은 더 빨랐다. 이미 삼성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10'에는 프라이빗키를 지갑 안에서 보관할 수 있는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와 '삼성 블록체인 월렛' 등의 디앱(DApp·탈중앙화 앱)이 탑재됐다. 암호화폐 결제 사업을 염두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유력하게 나온다.
삼성과 애플의 잇따른 암호화폐 결제사업 진출의 시그널은 단순한 블록체인 사업 확장을 넘어 다가올 암호화폐 결제 시대를 이끌어갈 스마트폰 플랫폼 전쟁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두 회사는 스마트폰 생태계를 이끄는 글로벌 선두 기업들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삼성이 21.7%로 1위, 애플은 13%로 3위를 기록 중이다. 두 회사(애플 약 1034조원, 삼성전자 약 265조원)의 시가총액 합계만 1300조원가량에 이른다.
스마트폰은 금융, 문화, 쇼핑 등을 위해 꼭 거쳐야 할 중요 결제 플랫폼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발간한 '2018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금·신용카드 없이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하거나 돈을 부치는 간편송금·결제 서비스의 일평균 이용금액은 2년 만에 6.3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부분은 현금-신용카드-모바일 결제에 이어 디지털 자산인 암호화폐가 다음 단계 결제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삼성과 애플의 최근 행보는 스마트폰에 탑재될 암호화폐 지갑을 활용한 실물결제 시대를 대비한 사전 포석인 셈이다.
스마트폰에서 암호화폐 실물결제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확산 가능성은 작지 않다. 블록체인업계의 복수 관계자들은 "암호화폐 결제는 초기 단계이지만 확산과 대중화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3~5년 안에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결제를 둘러싼 삼성과 애플의 경쟁은 이들이 IT 제조기업이라는 태생적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한 모바일 지급결제 기업의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판매해 수익을 거두는 제조업 기반의 삼성과 애플은 암호화폐를 위시로 한 블록체인시대에서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암호화폐 결제지갑을 탑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삼성, 애플 이외에 페이스북 등이 포진하는 SNS 플랫폼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이르면 이달 중 암호화폐 프로젝트 백서를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내년 암호화폐 기반 결제시스템을 출시할 예정이다. 페이스북은 월 사용자 수 23억명의 거대한 사용자 데이터베이스가 장점으로,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사업은 암호화폐 결제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국내에서는 카카오의 행보가 주목된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는 현재 블록체인 서비스 확산을 목표로 글로벌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개발 중이며, 오는 27일 메인넷을 오픈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 SNS 메신저인 카카오톡에 암호화폐 지갑이 탑재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버의 일본 법인인 라인 주식회사가 제공하는 글로벌 메신저 '라인'은 블록체인 전문기업 언블락을 설립하며 자체 암호화폐 '링크(LINK)'를 선보이기도 했다. 향후 라인페이의 간편결제 지불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플랫폼 주도권 경쟁을 잃지 않기 위한 경쟁이 암호화폐 결제시스템 쪽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라며 "궁극적으로는 사용자들을 위한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 확산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에는 큰 활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부사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매키너리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연례 '2019 세계 개발자 대회(WWDC)'에서 새로운 맥 OS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