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해외도피가 현명한 일일까

입력 : 2019-06-26 오전 6:00:00
범LG가 3세 구본현씨가 검찰 수사를 받다가 해외로 나간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조카인 그는 지난해 10월 네덜란드로 출국한 이후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는 한국 검찰의 요청에 따라 그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구씨는 2007년에도 주가조작으로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 등으로 실형을 받은 바 있다. 또다시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 마음은 이해된다. 그렇지만 한국이 자랑하는 재벌의 총수 일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해외도피 행각을 벌이는 것은 그만이 아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 한근씨는 21년 전 해외로 도주했다. 정한근씨는 결국 지난주 파나마에서 체포돼 압송됐다. 정 전 회장은 해외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해외로 빠져나가 2년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경찰의 출두 요구를 받은 김 회장은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머물러 있다며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외교부는 그의 여권을 무효화했다. 그럼에도 그는 귀국과 출두를 계속 거부해 왔다. 그는 한 술 더 떠 여권 반납조치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적반하장의 전형적인 사례 아닌가 한다. 당연하게도 법원은 그의 소송을 물리쳤다. 
 
이와는 경우가 다른 인물들도 있다. 과거 1979년 12/12 사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에 가담했던 조흥 당시 헌병감은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수사를 피해 해외로 나간 뒤 귀국하지 않았다. 그는 끝내 귀국을 마다하다가 지난해 캐나다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도됐다. 
 
또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계엄령 문건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받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도 2017년 12월 출국한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명박정부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맡았던 이인규씨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 때 화려한 자리에서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은 명예에 걸맞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자신은 물론 군과 검찰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 
 
이들이 장기간 해외에 도피해서 생활하기 위한 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하고 누가 도와주는지 궁금하다. 한 보도에 따르면 조흥 전 헌병감의 경우 도피후 캐나다에서 살면서 군인연금을 받아 생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는 뒤늦게 지난해 초 '군인연금법 시행령'을 고쳤다. 연금의 절반을 지급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재벌가의 경우 아마도 이와는 다르고 훨씬 지능적이고 복잡할 것 같다. 해외에 재산을 은닉해 뒀을 가능성도 있다. 정한근씨가 받은 의혹도 바로 그런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해외도피자들에게는 국내외에 '암흑의 후원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이들의 도피 자금 출처와 '암흑의 후원자'를 철저히 가려낼 필요가 있다. 
 
귀국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렇지만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명저 <고르기아스>에서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보다 당한 사람이 더 행복하고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처벌 받지 않은 사람보다 처벌 받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새로운 삶을 도모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이 세상 살면서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런 잘못을 딛고 일어서는 것 또한 가능하다. 
 
최근 마약 혐의로 구속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 정아무개씨는 스스로 귀국해 법정에 섰다. 그의 행위는 법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 역시 그것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연령이나 사회경험이 훨씬 많은 김 회장 등의 경우보다 더 정직하고 용기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씨는 법정 최후 진술에서 "그동안 얼마나 거만하게 살아왔는지 뼈저리게 느꼈다"며 "선처해 주면 사회로 돌아가 성실히 살겠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자세만으로도 일단 충분하다. 앞으로는 '거만한 재벌3세'가 아니라 선량한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불명예스럽 사건 때문에 해외로 나간 다른 사람들도 정씨의 진술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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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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