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쉬운 길’

입력 : 2019-02-27 오전 6:00:00
“지난 3년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등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이제 ‘보릿고개’를 넘기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현대중공업 인수설에 벼랑 끝에 내몰리는 심정입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로 한 후 한 신문은 거제도의 민심을 이렇게 전했다. 실제로 상당히 뜻밖이고 충격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998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한때 한화그룹이 인수하겠다고 했다가 무산된 적도 있다. 2015년에는 '분식회계 사태' 까지 터져 2조9000억원의 출자전환 조치가 단행되고 4조2000억원의 신규자금이 투입됐다. ‘돈 먹는 하마’ 같았다.
 
그러나 헛돈을 쓴 것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생활과 한국 조선산업의 기반을 지키기 위한 비용이었다. 따라서 지원 자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라도 대우조선해양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되찾기를 모두가 고대해왔다. 
 
그 결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은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입증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도 선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외계인’이 나타나 대우조선해양을 가져가려 한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데려가듯이 말이다.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의 생존을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온갖 정성을 다한 사람들에게는 분명 허망한 일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국내업계 판도가 1강1중으로 바뀌면서 일단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다. 해외수주 과정에서 과당경쟁도 피할 수 있다. 현재의 ‘3강’ 체제에 여러 부작용이 있으니 개편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대우조선해양을 한없이 산업은행 관리 아래 둘 수도 없다. 
 
수주잔량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더하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1698만9000톤에 이르러 세계 시장의 21.2%를 차지하게 된다. 그 다음 순위를 차지하는 일본 이마바리조선소나 삼성중공업의 3~4배 수준이다.  특히 LNG선과 대형 유조선의 양사 합산 점유율은 60% 안팎에 이른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기존의 계열사 외에 대우조선해양까지 더해 난공불락의 초대형 조선사로 우뚝서게 된다.  
 
그러나 불안감도 엄존하다. 무엇보다 합병후 노동자 고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당장이야  안심시키기 위해 인력감축이 없을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대우증권을 인수할 때의 약속과 달리 최근 희망퇴직을 단행한 미래에셋증권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3일 HSD엔진, STX엔진, STX중공업 등 엔진납품업체 노조가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자회사인 대한조선의 진로 역시 짙은 안개에 잠겼다. 이밖에 잠수함 등 방산분야의 독점이나 유럽연합 등의 독점심사 통과 여부도 풀어야 할 숙제이다.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과연 시너지는 있을까?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한국 조선업 발전에 대한 기여도 크지 않다는 평가다. 박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합병이 성사되면 대우조선해양의 전문인력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거제도와 울산의 지리적인 거리 때문에 설비감축을 통한 효율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조선산업에 필요한 것은 전문경영인 체제이지 오너 체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래야 대우조선의 우수한 엔지니어링 능력을 잘 활용하고 한국 조선산업을 지킬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 할까? 대우조선해양의 선박영업을 차단하고 미인도 드릴십 6척에 걸려있는 현금 2조7000억원 때문이라는 것이 박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한 마디로 합병에 객관적 타당성이 없다는 평가이다. 
 
인수 본계약이 체결될 때까지 숙고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그 사이 다른 길은 없는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사모펀드를 활용하는 방법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이 기필코 인수를 실현하겠다고 결심한다면 더 큰 성의를 발휘해야 한다. 노동자와 협력업체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인력감축 등 인위적인 조치를 자제하고 함께 세계 최고의 조선사로 발전시키겠다고 재삼재사 다짐해야 한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 현대중공업 총수 일가가 앞장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어려워 보이지만 가장 쉬운 길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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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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