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가 최근 암호화폐산업 관련 규제 권고안을 발표한 가운데, 중소 거래소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번 권고안으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포함한 가상자산서비스제공업체에 대한 강화된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다. 당장 지난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FATF 권고안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내용이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1일 블록체인업계에 따르면 FATF의 암호화폐 관련 규제 권고안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중소 거래소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200여개로 추산된다. 이중 실명확인 계좌를 이용하는 곳은 업비트, 빗썸, 코빗, 코인원 4곳뿐이다. FATF 권고안과 국회 계류 중인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영업을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한다. 이때 실명확인 계좌를 갖고 있지 않은 거래소는 신고가 반려될 가능성이 있으며, 나머지 거래소는 향후 실명확인 계좌를 받지 못할 경우 당장 영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무분별하게 운영됐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시장에서 정리되는 등의 긍정적인 면은 있다. 올해 상반기 비트코인을 필두로 암호화폐 시장이 오름세로 돌아서 거래소 관계자들은 반기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찬물을 끼얹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회원 3만명의 국내 10위권 암호화폐 업체 대표가 470억원을 빼돌린(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는 등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투명성에는 아직 물음표가 달려 있는 상황이다. 올해만 5곳 이상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문을 닫았으며 암호화폐 발행업체 코인업은 수천억원대 사기혐의로 간부 5명이 구속 기속되기도 했다. FATF 규제 권고안에 힘입어 국내 법제도가 시행되면 이 같은 자격 미달의 거래소를 걸러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명계좌 발급 조건이 명확하지 않은 게 현실이고, 현재 4곳 이외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무조건 영업정지를 내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정부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4대 거래소 이외의 고팍스, 한빗코 등 비교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받는 토종 거래소들은 실명계좌 없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오케이코인 코리아, 후오비 코리아 등 글로벌 거래량 상위에 이름을 올리며 비교적 공신력을 인정받는 거래소들의 국내 법인 또한 은행들과 실명계좌 계약을 하지 못한 채 국내 영업을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실명확인 계좌가 없는 대부분의 거래소는 법인계좌로 고객의 암호화폐 입출금 서비스를 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암호화폐 투자를 투기로 터부시하는 등 부정적 기류를 보이면서 은행이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 법인계좌에 입금해도 이용자에게는 금전 반환 청구권이 발생해 법적 보호를 받게 되지만, 문제는 법인계좌에 이체한 자금은 거래소 운영자금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도 무방해 법인 대표의 횡령·사기에 더 쉽게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에게 실명가상계좌를 발급받은 4곳을 제외한 나머지 중소 거래소에서는 특금법이 시행되면 은행이 거래소의 법인계좌를 해지할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심거래보고 등 강력한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부과한 점도 중소 거래소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도 높은 AML, KYC(고객확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데, 거래소 대부분이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신생 스타트업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경택 블록노드 총괄이사는 "FATF 권고안을 수용할 경우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시스템 유지·관리 비용이 급증하게 되고 암호화폐 중소형 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업체들의 줄도산이 야기될 가능성도 있다"며 "현재의 강력한 FATF의 규제 수위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채 바로 적용할 경우 암호화폐 거래는 더욱 음성화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특히 P2P방식의 거래를 통해 더욱 개인간 거래의 장외거래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결국 일부 투기를 조장하는 거래소를 걸러내면서 신산업인 암호화폐업을 키우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규제 당국의 정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