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가 최근 암호화폐산업 관련 규제 권고안을 발표한 가운데, 트래블 룰(travel rule)이 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 송신자, 수신자 모두의 신원확인 의무를 부과한 트래블 룰에 대해 업계는 블록체인 기술로 수신자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우려를 나타내는 상황이다.
트래블 룰로 불리는 FATF 권고안 15안의 7(b)항에 따르면 암호화폐를 보내는 송금인과 이를 받는 수신자 등 거래 당사자 정보를 암호화폐 거래소나 지갑서비스 업체들이 금융당국에 제공해야 한다. 관계 당국이 요청하면 거래소는 거래 당사자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블록체인업계에 따르면 트래블 룰이 암호화폐 거래소 등에 그대로 적용되면 암호화폐 거래소는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쌍방의 신원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현재 온체인에서 진행되는 암호화폐 거래에서 발신자 정보는 거래소가 보유할 수 있지만, 트래블 룰을 따르면 수신자까지 모두 공개해야 하는 부분이 업계가 우려하는 지점이다. 현재로서는 지갑 소유자 신원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사용 중인 A 지갑과 새로 만든 B 지갑이 있는 경우 기존 사용하던 A 지갑은 거래소를 이용한 이력, DApp을 이용한 이력 등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새로 만든 B 지갑의 경우에는 어떠한 이용내역도 없어 지갑의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더리움의 경우 개인키를 생성해 만들 수 있는 지갑 개수가 2^256(256승)개에 이른다"며 "신원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트래블 룰은 전통 금융산업에서 자금세탁방지를 목적으로 탄생한 제도로, FATF가 블록체인 기술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는 원래 소유자의 신원을 알고자 함이 아닌, 신원을 알지 못해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춘 기술이라 트래블 룰이 블록체인의 기본 철학과 어긋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거래소 간 국제대응이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블록체인이 탈중앙화시스템인 만큼 중앙화된 시스템을 통해 쌍방 신원 확인이 현재로서는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구속력을 지닌 FATF 권고안을 맞추기 위해서는 인가받은 글로벌 거래소들이 합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신원확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근본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제3 영역의 플랫폼이 등장할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된다. 블록체인 비영리단체 MBGA(Make Blockchain Great Again)의 강하다 PM은 "신원인증을 위한 중간 플랫폼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며 "거래소는 직접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해당 플랫폼으로 인증처리가 가능하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제3의 플랫폼을 이용해 암호화폐 거래 당사자의 신원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 솔루션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