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BBC가 먼저 알아본 DJ 예지 "한국은 집 같은 곳"

빌리 아일리시와 함께 '주목할 만한 신인'에 올라
"내 문화의 기원은 한국…한국어 발음 시적인 매력"

입력 : 2019-07-18 오후 4:04:1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두살때 걸음마 떼/ 아파트서 울부짖어/ 엄마 아빠 어디있어'(곡 'New York 93')
 
한국어와 영어가 뒤범벅된 몽환적인 전자음. 뉴욕의 한 클럽이 물고기떼가 유영하는 심해처럼 변해 버린다.
 
지난 2017년 글로벌 언더그라운드 음악 방송 '보일러 룸'에 방영된 예지(YAEJI·이예지·27)의 디제잉. 이 한국계 미국인 DJ가 움직이는 분주한 손이 유튜브로 생중계되자 세계 힙스터들이 들썩였다. 영상에는 아직까지도 '지구상 가장 쿨한 사람', '한국에서 신이 왔다'는 댓글들이 달린다.
 
DJ 예지. 사진/프라이빗커브
 
나비의 날개짓이었다. 미풍은 1년도 안돼 태풍이 됐다. 
 
이듬해 영국 공영방송 BBC는 "전례가 없던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주목할 만한 신인(사운드 오브·Sound of 2018)'으로 거론하며 '괴물신인' 빌리 아일리시와 같은 줄에 그를 배열했다. 카네기 멜론대의 개념미술 전공자며 취미로 음악을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로워했다.
 
BBC는 2003년부터 해마다 유망한 신인들을 선정해 왔는데 대체로 적중했다. 매년 말 음악 비평가들과 업계 종사자들의 투표로 '사운드 오브'를 산출한다. 첫 해 50센트를 시작으로 아델(2008년)과 샘 스미스(2014년) 등이 이 리스트를 거쳐 세계적인 뮤지션이 됐다.
 
지난해 미국 음악전문지 피치포크 역시 그의 2번째 EP를 심도 깊게 분석했다. '오토튠을 바른 웅얼대는 한국어가 뉴욕 현지 프로듀서들에게 인기 있다'고 소개했다. 이 앨범 수록곡 '드링크 아임 시핑 온(Drink I'm Sippin On)'은 현재 유튜브 조회수 800만을 앞두고 있다. 동그란 테안경을 쓴 그가 이국적인 풍경을 거닐며 '그게 아니야'란 한국어를 몽롱하게 읊조린다.
 
DJ 예지. 사진/프라이빗커브
 
오는 8월1일 내한을 앞둔 이 실험적인 뮤지션을 서면으로 만나봤다. 예지는 "한국은 집 같은 곳"이라며 "제 가족과 문화의 기원이 여기서 시작됐기에 그렇다. 항상 심적으로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며 한국어 등 문화 코드를 내적으로 체화했다.
 
"한국어는 각이 져 있고 질감이 있는 느낌이에요. 발음에 시적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어로 말할 때는 노래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21세기의 언어는 그에게 소통의 도구보단 "추상적, 상징적 의미"에 가깝다. 한국어를 자신의 음악에 악기처럼 활용하는 이유다. "지금의 언어는 문화를 대표하는 것 같아요. 한국어는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언어고요. 그 어감을 (음악에) 잘 활용하려 노력해요."
 
카네기멜론대 입학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면서 교내 DJ로 활동 하던 중 하우스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미술과 음악, 이 둘을 융합시키려 하다보니, 점점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 끊임없이 고민해요.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늘 심사숙고해요." 
 
DJ 예지. 사진/프라이빗커브
 
미술학도인 그는 음악에 어울리는 영상과 패션을 직접 연출하기도 한다. 길 위로 파인애플 픽셀들이 게임 아이템처럼 떨어지기도 하고(곡 'Feel It Out' 뮤직비디오), 뷰튜 유튜버들의 동작을 흉내내는 영상으로 미에 대한 갈망과 자아를 잃는 괴리감을 말하기도 한다.(곡 'Last Breath' 뮤직비디오) 이 작업물들을 관통하는 건 국경, 언어, 장르 등 '경계'를 넘는 고민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서 더 확장하고 싶은 길들은 너무 많아요. 투어를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친구, 가족과 대화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앞으로도 여러 분야로 탐험할 계획이예요."
 
그의 무국적 언어, 무국적 음악은 세계로 향하고 있다. 
 
"제 노래는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어요. 울적한 코드를 쓴 재즈, 하우스 느낌에 기울어져 있긴 하지만요. 오히려 제 감성적인 면들이 음악을 규정하지 않나 생각해요."
 
오는 8월1일 한국에서 세 번째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2017, 2018년 한국에서 공연한 적은 있지만 그땐 DJ셋이었고, 라이브셋은 아니었어요. 올해는 미국에서 투어했을 때 갖고 다니던 탄탄한 라이브셋을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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