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은 보석이 이뤄질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만큼 엄격한 수준이 될까 우려했지만 실제 재판부가 양 전 원장에게 제시한 조건은 김경수 경남지사 수준의 일반적인 보석조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양 전 원장도 재판부의 보석 결정을 수용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박남천)가 22일 양 전 원장에게 내린 직권보석 결정문에 따르면, 보석 조건은 크게 △현재 주거지로 주거 제한 △사건 관계자와의 연락 불가 △보증금 3억원 납입 △3일 이상 여행이나 출국 시 사전 신고 등 일반적인 내용이다.
주거지 제한·사건 관계자 연락 불가·보증금 3억원 등 조건
재판부는 "주거를 현재 경기도 성남시 시흥동 주거지로 제한하고, 변경 시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 밖에 법원이 피고인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행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또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서도 당해 사건 재판에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들이나 그 친족과 만나거나 전화, 서신, 팩스, 이메일, 휴대전화 문자전송,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그 밖의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양 전 원장은 소환을 받으면 정해진 일시와 장소에 출석해야 하며, 도망 또는 증거 인멸 행위를 해선 안 된다. 보증금 3억원은 피고인 또는 배우자, 변호인이 제출하는 보석보증보험증권 첨부의 보증서로 갈음할 수 있고, 보석조건을 위반할 시 보석을 취소하거나 보증금 몰취 및 10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또는 20일 이내 감치에 처할 수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와 유사한 일반 보석 조건·MB식 ‘자택구금’과 달라
이는 창원 내 자유로운 출퇴근과 외출이 가능한 김 지사의 보석조건과 유사하다. 김 지사의 보석에는 △창원시 주거지로 주거 제한 △드루킹 사건 피고인들 및 증인 등 재판관계인과의 연락 불가 △보증금 2억원 △3일 이상 주거지를 벗어날 시 사전 신고 등의 조건이 붙었다. 양 전 원장의 보석 보증금은 액수가 더 큰 대신 전액을 보석보증보험으로 갈음할 수 있지만, 김 지사는 2억원 중 1억원은 반드시 현금으로 납입해야 했다.
양 전 원장은 당초 ‘자택구금’ 수준으로 불리던 이 전 대통령의 보석만큼 엄격한 조건이 달리면 보석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주거 외 외출도 제한됐고, 관할경찰서이 이를 매일 1회 이상 확인토록 했다. 특히 병원 진료 시에도 ‘주거 및 외출제한 일시해제’라는 보석조건 변경 신청을 해야 하며, 복귀 후 보고토록 했다. 또 사건 관계인과의 연락 금지는 물론, 배우자와 직계혈족·직계혈족의 배우자·변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만나거나 연락할 수 없도록 그 범위를 더 좁혔다.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만큼 보증금은 10억원으로 크지만, 이 전 대통령은 9억여원 이상을 보증보험으로 갈음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주 화요일 한 주간의 시간별 활동내용을 포함한 ‘보석조건 준수 보고서’ 제출도 의무화했다.
양 전 원장, 보석 수용…23일부터 불구속 재판
보석 수용을 결정한 양 전 원장 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부 결정이 있은 직후 서울구치소에서 양 전 원장을 접견하고, 보증보험증권 발급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중 증권 발급 절차를 완료하면 석방이 가능하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지난 2월11일 구속기소된 양 전 원장은 3월25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4회의 준비기일과 16회의 공판기일 및 한 차례 보석심문 등의 재판을 구속 상태에서 받아왔다. 다음 달 11일 0시를 기해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었지만, 앞으로 남은 증인신문과 추가 증거조사 등 재판 장기화가 예상되는 만큼 재판부는 ‘구속기간 만료 석방’ 대신 ‘조건부 석방인 보석을 통한 불구속 재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기소 후 처음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될 양 전 원장의 다음 재판은 오는 23일 오전 10시 열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5월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련 1차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