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신라젠의 '펙사벡' 임상 중단 등 거듭된 악재에 바이오업계도 침울하다. 기대를 모았던 업계의 주요 임상이 줄줄이 중단되면서 시장의 불신감이 커질 것을 우려한다.
앞서 신라젠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와 펙사벡 간암 대상 임상 3상시험의 무용성 평가 관련 미팅을 진행한 결과, DMC가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했다고 2일 공시했다. 회사는 DMC로부터 권고받은 사항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고할 예정이며, 진행 중인 펙사벡의 간암 임상은 조기 종료 수순을 밟게 됐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4일 서울 여의도 서울시티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임상 중단 권고를 받은 펙사벡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추가 임상과 라이선스 아웃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이번 간암 대상 유효성 입증에는 실패했지만, 향후 다수 암종에서의 다양한 면역관문억제제와의 병용요법 및 술전요법 효능을 입증할 임상은 물론, 반드시 라이선스 아웃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혹시나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면서 바이오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최근 세계 최초의 유전자 골관절염 치료제로 주목받언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의 성분 변경 사태를 비롯해 주요 바이오기업들의 임상 결과들이 당초 기대에 못미치면서 국산 바이오 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시작된 인보사 파문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관련 수사로 싸늘했던 상반기를 보내던 국내 바이오 분위기는 6월27일 에이치엘비가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 3상이 당초 목표치에 미달하는 결과를 도출하며 급격히 차가워졌다.
여기에 리보세라닙과 함께 국산 항암제 기대주로 꼽히던 펙사벡 마저 임상 중단 권고까지 내려지자 급격히 얼어붙었다. 특히 신라젠의 경우 최근 수년간 자본시장 내 바이오 붐을 주도한 대표 기업으로 꼽혀왔던 만큼 후유증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헬릭스미스와 메지온 등 굵직한 하반기 주요 발표를 앞두고 발표된 두 건의 사실상 실패 사례에 전반전인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오히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최근 국내 업계 필요성이 대두되던 '옥석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맞을 건 맞고' 가되, 지나친 기대감에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못한 일부 기업에 과도할 정도로 투자 심리와 자금이 쏠려온 최근 업계 분위기를 쇄신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라젠의 경우만 봐도 펙사벡 개발 성공 기대감에 최근까지 코스닥 시가총액 TOP3 안에 이름을 올릴 수준으로 외형을 키웠지만, 마땅한 수익구조가 없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기대를 모았던 기업들 파이프라인들의 최근 발표에 업계와 시장 모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애초에 신약 개발이라는 건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사안"이라며 "최근 몇 건의 임상 실패가 국산 바이오 산업 전체의 질을 좌우하는 척도가 되기 보단, 학습효과를 통해 가치 있는 파이프라인을 변별하는 안목이 길러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젠 소속 연구원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신라젠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