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최저임금이
2.87% 인상된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되자 노정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노동계 위원들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직 사퇴를 발표하며 노정관계의 단절을 선언했다
. 노동계 위원 전부가 사퇴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당분간 최저임금위원회는 공전될 수밖에 없다
.
노정관계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은 최저임금 때문만은 아니다. 6월부터 터져 나온 노동계의 대정부 총파업 투쟁은 전초전이었다. 노동계는 문재인정부의 노동개혁이 좌초했다고 판단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로 그 효과가 반감됐고, 주 52시간제는 탄력근로제 등 노동시간 유연화 조치 확대로 방향성을 상실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선입법 후비준’ 방침을 고수해 골든타임을 놓쳤다. 문재인정부의 으뜸 공약이었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도 무기계약직 양산, 자회사로의 전환 남발, 전환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뒤 따르지 않아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볼멘소리다. 사회적 대화의 상징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4개월째 본위원회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사과했지만 다른 노동정책들은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19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내년도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인 저임금노동자에게 많은 아픔을 드리는 결정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생활비용, 생계비를 낮추고 사회안전망을 넓히는 것까지 모두 들어가는 종합 패키지 정책이라며 정부가 저임금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부분적인 정책 조정은 있지만 노동개혁은 약속대로 실천하겠다는 주장이다.
노동존중사회를 말하며 과거 어느 정부보다 저임금노동자의 생활 개선, 노동권 보장,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섰던 문재인정부와 노동계가 전면 대결 구도를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정부와 노동계 모두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기 때문일까.
한국 노사관계의 대립과 갈등 구도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것이어서 쉽게 해소되기 힘들다. 노정관계와 노사관계의 전진을 위해서는 미래의 비전을 함께 만들고 공동 이익을 찾아야 하나 쉽지 않다. 변화의 싹은 상식의 회복에 있는지 모른다. 민주주의의 심화와 노동의 시민권 회복에서 시작해 보자. 과거 노동자는 경영의 파트너이며, 국정의 동반자가 아니라 시혜의 대상일 뿐이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공돌이 공순이’라는 혐오의 언어에서 벗어났을 뿐 온존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였다. 노동자들은 어렵고 불쌍하므로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는 시혜의 대상일 뿐이다. 19대 대선과정에서 모든 정치세력들은 노동자들에게 온갖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였다. 그것은 노동조직과 함께 만들어나갈 과제가 아닌 무엇을 베풀겠다는 시혜적 약속이었다.
노사관계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는 노동존중사회의 전면화가 절실하다. 노동존중사회는 노동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튼튼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시장이 모두를 자유롭게 하고,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무한경쟁을 통한 승자독식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모두가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협력과 공생의 가치가 시대정신이다.
신광영교수는 노동존중사회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첫째, 물질적 차원으로 일에 대한 적절한 경제적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이는 공정한 분배와 관련된다. 둘째, 사회문화적 차원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인격적 존재로 대우를 받는 인정 차원이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고용주로부터 인격적으로 멸시 당하거나, 푸대접을 받는 경우, 노동은 기피의 대상이 되고, 노동자는 경멸의 대상이 된다. 셋째, 권력적 차원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관련하여 능동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용주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서 일하는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일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일을 통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실현하는 삶을 강화하는 제도인 동시에, 작업장의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심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한국의 노동은 어디에 있는가. 1987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은 보상과 인정을 위한 외로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이제 노동은 작업장과 사회의 주인으로 당당히 나서야 한다. 권력은 노동자를 노동정책의 수동적 시혜자로 바라볼 뿐 경제민주화의 주체로 연대하려는 인식은 원천적으로 배제돼 있다. 노조 조직률 강화, 노동운동 활성화 등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조적인 해결책은 언감생심이다. “일자리를 늘리겠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정치인들의 언어들은 민주주의와 부합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시혜의 대상이 아닌 일터와 사회의 주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