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누가 기업을 부정하게 만드는가

입력 : 2019-10-09 오전 6:00:00
기업은 분식회계 수단이 너무 많다. 회계 담당으로 믿을 만한 사람만 두면 비자금 조성은 식은 죽 먹기다. 비자금 조성 사례를 보면, 자산을 판 대금을 낮게 계상하는 방식이 있다. 이 경우 거래처와 이중 계약이 필요하다. 건설사의 경우 공사 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것처럼 이중 계약을 꾸민다. 시중 노임단가로 일당을 지급하는 현장에서는 가공의 인건비를 지불하는 방법도 쓰인다. 공사비를 불리는 회계부정이다. 해외 거래가 많은 대기업은 환율을 유리하게 책정해 외화자산가치를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건설사는 더 쉽게 공사 진행률을 조작해 미수금을 과대계상할 수 있다. 건설업은 하도급 구조로 오랜 이해관계가 형성돼 있는 만큼 이중 계약 등 장부조작이 쉬운 점도 지적받는다. 실제 과거 기업집단에선 계열 건설사들이 비자금 창구로 이용돼 적발된 사례가 많았다.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건설사들은 대체로 4분기 실적이 부진한 경향이 나타나는데 연중 불필요하게 비용 처리한 부분을 일시에 털어낸다는 의심을 산다. 비단 건설사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내 여러 상장사들은 4분기 실적 공시를 건너뛰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부실한 회계를 감추기 위한 것이란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면 그렇게 조성한 비자금은 어디에 쓰일까. 그동안 비자금 사용처를 보면 단골이 정치권이었다. 올해 국정감사 기간에 접어들어 정치자금이 필요한 내년 총선도 앞둔 상황에서 기업의 정치권 비자금 경로가 커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수십억원의 협박이 있었다는 의혹 보도도 있었다. 그 사실관계를 떠나 필자도 떠오르는 게 있다. 기자 초년 시절 한 공기관 홍보 임원을 만난 자리였다. 대화 중 임원이 전화를 받았는데 한참 전전긍긍했다. 무슨 일인지 전화가 끝난 후에 물어봤는데 모 국회의원이 후원금을 요청했으나, 사정이 어려워 거절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이 그럼 국감에서 두고 보자며 협박성 경고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홍보 임원이 쩔쩔맸다. 해당 임원의 목숨 줄도 달린 일이라 당시엔 기사화하지 않았지만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었다.
 
거긴 피감기관인 공기업이었지만 일반 사기업에 대해서도 그런 압력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국감은 기업 홍보나 대관에게 가장 큰 연중행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국감철만 되면 홍보 담당자의 표정이 어둡다. 회사 CEO를 증인 명단에서 빼내는 데 허튼 힘을 쓴다. 국정감사는 국정(國政)을 살피는 일인데 사기업 들추기에 혈안이니 본말이 전도돼 세금이 낭비되고 회사 자금이 유용된다.
 
국감 현장에서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거나 책임소지가 불분명한 문제를 두고도 기업을 혼내기만 바쁘다. 국감에 불려나간 애먼 기업은 지배주주 일가만의 개인회사가 아니다.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면 그 회사 주식을 산 주주들도 함께 피해를 본다. 이를 고려하면 국감무대에 들러리를 세우는 데는 국회의원 자격이 의심스런 경솔함이 느껴진다. 기업 부정 사례는 엄연히 이를 관리하는 감독기관이 있다. 감독기관이 감시를 제대로 했는지 따져보는 게 국감 본래 목적이다. 국감은 누가 본업에 충실한지 피감기관뿐만 아니라 국회 상임위원회 의원들에게도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이재영 산업2부장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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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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