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정보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도래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IT산업뿐만 아니라 전 산업군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첨단산업부터 가장 1차원적인 농업에 이르기까지 근간을 흔드는 변화를 IT기술이 주도하며 의료기술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스마트헬스케어로 통칭되는 차세대 의료기술 가운데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통신장비로 연결된 의료장비를 통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격의료'는 초연결시대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가장 적합한 의료분야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발맞춰 전 세계 원격의료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약 383억달러(약 45조7700억원)였던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오는 2025년 1305억달러(약 156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원격의료 시장 육성을 위해 잰걸음을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의료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의 경우 의료기관의 절반 이상이 원격진료 또는 그와 유사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보건사회복지부에 따르면 미국 의료기관의 60% 이상, 병원의 50% 가량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 2015년 기준 1억5000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원격진료 서비스를 받은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소비자 인식 역시 우호적이다. 전체 환자 가운데 16%가 원격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고, 받지 않은 환자들 가운데 61% 가량이 향후 원격의료를 선택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가파른 의료서비스 시장 규모 성장(2012년 1조9986억위안→2016년 3조2872억위안)을 보이고 있는 중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전히 기초 단계인 의료위생 위주의 의료서비스 환경과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본격화 2014년)에도 불구,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원격의료의 핵심기술인 컴퓨터와 통신 기술을 비롯해 데이터화 의료장치 및 정보화 관리 기술 등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전폭적 정책 지원 아래 지난 2016년 전년 대비 51% 성장한 61억5000만위안(약 1조320억원)에 달하는 원격의료 시장규모를 보였다. 지난해 4월에는 인터넷 진료행위를 더욱 규범화하고 원격의료 서비스가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에 비해 의료기술이 한 수 아래라고 평가되는 동남아 국가들도 원격의료 분야에선 뒤쳐지지 않는다. 개발도상국 특성상 미비한 의료시스템과 부족한 인력을 보완하기 위해 오히려 더욱 적극적인 모습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직 인프라 구축 등 초기 단계지만 오는 2039년까지 전자의료기록과 원격진료 등을 활성화하는 'E-Health 로드맵'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방사선진단과 초음파진단, 심전도 검사 등을 집중적으로 원격의료 분야에서 개발하는 동시에 국가·지방 원격의료 병원과 지방 병원, 보건소 등 다양한 형태의 기관을 시범 운영 기관으로 지정한 상태다. 국가 인구가 55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미얀마 역시 정부의 제도적 지원 아래 외국계 통신사의 진출이 줄을 이으며 시장 개척이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이밖에 아랍에미레이트(UAE)의 아부다비는 지난 2013년부터 원격의료를 도입해 정부차원에서 시스템 관리와 정기 모니터링을 실시 중이고, 또 다른 대표 토후국 두바이도 2017년 고품질의 안정적 의료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보건청이 나서 원격의료를 도입해 관련 라이선스를 발급 및 관리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원격의료 활성화 움직임에도 국내 상황은 좀처럼 진척 없이 막혀있는 상태다. '의료인 간'이라는 제한된 형태긴 했지만 지난 2000년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태동하는 듯 했던 국내 원격의료산업은 다양한 산적과제에 보폭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를 둔 국내와 해외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범위다. 국내 의료기관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가 불가능한 반면, 해외 기관은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원격의료까지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격의료의 근간이 되는 IT기술이 전 세계 상위권이라고 평가받는 국내임에도 불구,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해외 병원의 경우 국내법에 제약을 받지 않는 만큼, 해외 병원과 연계에 국내 환자에게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등장하는 등 역차별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