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20주년 인터뷰③)'헛된 꿈이어도 꾸자', 데뷔 20년 기억을 걷다

20년 활동 비결, 음악에 대한 순수·희생…"마스터링 작업 땐 '토' 나올 정도"
"꼭 록 사운드여야 된다는 제한 없어…내년, 내후년 더 나은 밴드가 목표"
'헛소리 마' 들으면서도 키운 음악의 꿈…"꿈 꾸는 것 자체가 20년 동력"

입력 : 2019-10-12 오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데뷔 20주년이 되는 해. 꾸준히, 부지런히 음악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기간 음악은 중력과도 같은 힘을 발휘했다. 네 멈버들을 하나로 엮었고, 그 힘은 다시 팬들을 끌어 당겼다. 지구가 태양을 스무번이나 감싸 안는 동안의 세월. 넬[김종완(보컬)·이정훈(베이스)·이재경(기타)·정재원(드럼)]은 이제 그 기억의 시간을 걷는다.
 
"저희는 늘 현재 진행형을 추구하기 때문에 저희끼리 특별히 20주년을 챙기진 않았어요. 매일 음악을 하고 그 시간 하고 싶은 표현이나 말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저 돌아보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났음을 느끼는 거죠."(재경)
 
"다행히 멤버 넷 다 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에요. 올해도 팬들이 챙겨줘서 자축할 만한 일이구나 알았는데,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정훈)
 
밴드 넬 베이시스트 이정훈.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멤버 교체없이 20년을 활동한 건 국내 밴드사에서도 이례적. 밴드는 친구, 음악에 대한 순수, 희생 정신을 장기 활동의 비결로 꼽았다.
 
일단 이들은 모두 1980년생 동갑내기 친구.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으로 서로 얽힌 이들은 1999년 7월31일 인천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을 보러 갔다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PC방에서 팀명을 '넬'로 정했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동명의 영화에서 착안한 이름. 오랜시간 세상과 단절된 채 언어를 사용하는 주인공처럼 자신들만의 '음악 언어'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저희는 음악을 같이 하는 동료이지만 동시에 음악 외적으론 친구예요. 충돌되는 부분이 생기더라도 술 한잔 하며 친구로서 풀 수 있죠. 그게 아니면 일단 이렇게 오래 오기는 힘들었을 거예요."(종완)
 
음악을 대하는 순수함과 희생정신은 또 다른 비결. 여전히 멤버들은 음악을 좋아하며, 여전히 배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다. "넷이서 최선을 다해 음악을 만들면, 말만 최선이 아니라 인생에 다른 것을 포기할 만큼 그렇게 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단 순수한 믿음이 여전히 있어요."(종완)
 
"저희끼리 얘기하는 게 늘 계단식으로 성장했다는 말이예요. 삶의 변화가 확 있었던 것 같지 않지만 늘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소름끼치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좋은 음악이 나왔다든지,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든지. 앞으로도 그런 소름끼치는 순간들이 나왔으면 해요."(재경)
 
밴드 넬.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는 2017년 내한 당시 'Newton's Apple' 수록곡 'Grey Zone'을 직접 거론하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올해 9월엔 영국 DJ 듀오 써드파티와의 협업곡 '노던 라이츠(Northern Lights)'를 발표하기도 했다. 계단식으로 점차 성장하다보면 이들의 곡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거나, 웸블리 구장에서 울릴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에 밴드는 "웸블리를 계단식으로 갈려면…"이라 말을 흐리더니 "400년 정도 올라가야 할 것, 바벨탑 같은 느낌"이라고 유머러스하게 받아쳤다.
 
"처음 밴드 결성 당시 주변에 음악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땐 다 같이 술 먹으며 어마어마한 꿈과 목표를 늘어놨었죠. 그런 얘기 하는 와중에도 저희끼린 '계단식으로 가자'는 얘기를 했었어요."(종완)
 
"당시 관객수가 2~3명이었는데 일단 10명을 채우자, 했었고 또 10명을 채우면 그분들이 친구들을 데려올테니 20명이 될거다, 하는 식으로. 말씀해주신 것처럼 더 잘되면 좋겠지만 저흰 지금 이 속도로도 만족해요. 내년, 내후년이 됐을 때 지금보다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더 깊게 좋아해주시는 것. 우리 스스로도 음악이 늘고 열정이 커지면 그것만으로도 더 기쁠 것 같습니다."(종완)
 
밴드 넬 드러머 정재원.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20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자부할 만한 점으로는 후배 밴드들이 '넬처럼 되고 싶어요'라 할 때. 또 대중들이 음악을 듣고 '이 음악 넬스럽지 않아?' 할 때. 지난 20년 간 최고의 순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짚어달라는 질문엔 멤버 모두가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꺼냈다. 서로의 기억을 다시 서로가 이어붙이는 식의 말이 오갔다.
 
"거의 음악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하나가 모자라 음악을 완성 못시킬 때 저는 제일 힘들고, 반대로 그 하나가 해결되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왔을 때가 가장 만족스러워요."(재경)
 
"음악적인 최고의 순간은 없는 것 같고, 왜냐면 늘 불만족스럽거든요. 최고의 순간은 가장 최근에 멤버들과 서프라이즈로 재원이 차를 바꿔준 일. 친구로서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20년 만에 처음 봤어요. 최악의 순간은 이번 앨범 막바지 작업. 후반부 작업 땐 정말 '토'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네요."(종완)
 
"음악적 기쁨보다 더 컸던 것 같고…" 재원이 바로 말을 잇자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그것 말고도 좋았던 순간은 'Slip Away' 스트링 녹음 끝나고. 뉴욕 스튜디오에서 멤버 다같이 사진 찍었는 데 그 때 행복했던 것 같아요. 이번 태국 녹음 끝내고도 좋았고. 최악은 러시아 공연 때 베이스가 나오질 않아서."
 
다시 "나 그때 신나서 놀았지"란 농담으로 정훈이 받는다. 정훈은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해외 뮤지션들이 거쳐간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던 것과 이번 작업 후 종완의 '다들 수고했어'란 말을 최고로 꼽았다. 또 최악의 순간으로는 불의의 시스템 사고로 공연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꼽으며 "음악생활에서 제일 큰 위기 상황이었다"고 돌아봤다.
 
넬 정규 8집 'COLORS IN BLACK'.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20년 간 활동을 거치며 밴드는 사운드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초기 기타와 베이스, 드럼, 건반 구성의 날카롭고 록적인 곡들이 주를 이뤘다면, 몇년 전부턴 앨범 발매 때마다 신스, 시퀀스 사운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최근작 'C' 때도 시퀀스와 밴드 사운드 사이 최상의 밸런스를 끌어내 '한국의 콜드플레이'란 찬사를 받기도 했다. [(넬 20주년 인터뷰②)"영화도 맞는 배우 고르듯, 음악도 맞는 악기 있다" 참조] 
 
매 앨범 마다 시퀀스, 밴드 사운드 간 정해두는 비율이 있을까.
 
"사실은 밴드 사운드가 필요 없다면 아예 안 넣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음악을 하는 네 명이 모인 거기 때문이에요.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게 중요한 것이지, 가장 멋있는 기타나 베이스, 드럼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밸런스는 신경 쓰지 않고, 우리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모든 툴을 다 사용하자는 생각이에요. 근데 또 태생이 록이기에 의도치 않아도 하다보면 자연스레 밸런스는 맞는 것 같아요."(종완)
 
넬 정규 8집 'COLORS IN BLACK' 타이틀곡 '오분 뒤에 봐' 뮤직비디오. 고래가 유영하는 숲을 배경으로 이들이 초현실적 연주를 한다.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유튜브 채널
 
이번 앨범을 종결하는 마지막 곡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꿈을 꾸는 꿈'.
 
꿈을 꾸는 게 사치가 된 이 시대는 각박하게 느껴진다. '때가 어느 때인데 그런 꿈을 꾸니, 꿈 같은 소리 한다'고들 한다. 그럼 현실에서 꿈을 갖는 게 힘들면 꿈에서라도 가져야 하나. 이 곡의 탄생 배경은 이렇다.
 
"한 번은 버스에서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그 아기가 정말 세상 걱정 없이 평온하게 자더라고요. 인형 같이.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거죠. 이 아기가 몇년이 되면 몇살이 될 거고, 세상의 이런 저런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들을 느낄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씁쓸하고, 안타깝고."(종완)
 
그래서 곡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미안해, 아가'.
 
"저 아이가 스물 다섯, 서른이 되면 얼마나 빡빡하게 살까, 하다가 자라서 꿈을 꾸는 꿈이라도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종완)
 
돌아보면 넬 역시 지난 20년 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음악을 한다 하면 주변에선 '야, 헛소리 하지마' 했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 했다. 음악은 헛된 꿈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헛된 꿈을 품었다.
 
"'저러다 말겠지, 끝나겠지'란 말을 많이 들었지만 우리가 힘을 낼 수 있던 건 꿈을 꾸는 거 자체였던 것 같아요. 조금씩이지만 가고 싶은 방향에 대해 서로 얘기하면서. 그렇게 차근차근 해왔던 게."(종완)
 
이들이 나눠 준 앨범 소개글. 맨 마지막 구절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꿈을 갖고 사는 게 사치,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현실은 참 텁텁한 느낌이다. 그래도 꿈 속에서만이라도 꿈을 꾸자. 꿈이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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