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채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서 예상대로 거액의 손실이 발생했다. 오는 26일 만기인 우리은행 DLF 'KB독일금리연계전문사모증권투자신탁제7호(DLS-파생형)' 손실률이 98.1%로 확정됐다. 1억원을 넣은 투자자는 단 190만원을 건진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이 판매한 상품의 손실률도 46.1%로 확정됐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3일 발표한 중간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에 가입한 개인 투자자는 3004명으로 전체 투자자의 92.6%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60대 이상 투자자가 절반에 육박했다. 험난한 삶의 여정을 거치면서 아껴뒀던 노후자금을 한 순간에 날리게 된 것이다.
수천명의 개인투자자가 큰 피해를 입고 충격을 입었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상자가 당장 없다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상심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로마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보에티우스가 명저 <철학의 위안>에서 "인간의 신체에는 해를 입히지 않지만, 정신에는 참혹하게 상처를 입힌다"고 탄식한 그대로다.
게다가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문제의 상품을 판매하면서 5%에 가까운 수수료를 고객으로부터 뜯어냈다. 고객에게 돌아갈 수수료는 기껏 2%대에 불과한 반면, 수수료는 그 2배를 훨씬 넘는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더욱이 금감원 점검 결과 불완전판매로 볼 수 있는 의심사례가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류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채권금리 하락으로 DLF 손실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상품 판매를 계속했다고 한다. 말문이 막힌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3일부터 DLF 상품 설계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실태 점검을 위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그리고 IBK투자증권, NH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등의 증권사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다. 이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상대로 추가검사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파생금융상품을 흔히 '대량파괴무기'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이제 그 말이 실감 난다. 이름 모를 수천명의 고객이 허무하게 거액의 손실을 입었으니 또 하나의 '사회적 참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며 투자자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자기 책임으로 투자해야 하고, 상품의 안전성을 잘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옳은 말이다. 오늘날 자신의 책임을 모르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동시에 금융사들도 마땅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의 권익을 지켜가면서 이익을 내겠다는 기본정신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한국 금융사들은 그런 기본정신을 갖추지 않은 채 감언이설로 투자자를 꾀기 일쑤이다. 마녀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을 꼬드기듯이 말이다. 이번에 드러난 DLF 참사도 그렇게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위원장은 금융의 신뢰성과 금융사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못박아야 했다. 금융감독원도 미덥지 않다. 2018년 금융사의 파생상품 판매실태 점검을 위한 '미스터리 쇼핑'을 벌였지만 이번 사태를 막아내지 못했다. 과연 무엇을 위한 미스터리쇼핑이었던가?
그러므로 금융당국에 이번 사건의 처리를 맡겨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더욱이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은 오랜 세월 형성된 인맥관계가 있으니 명쾌하게 전모를 규명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피해자와 금융사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은 금융당국이 물론 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건의 진상규명은 차라리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맡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장완익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답변에서 현재 51건의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세월호사건과 가습기살균제 등 끔찍한 참사가 당연히 포함돼 있다. 이번 DLF 참사도 공분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SK와 애경 등 대기업에 의해 빚어졌듯이, 이번 DLF사건도 2개 대형은행에 이해 야기됐다. 따라서 이들 대형은행에 대해서도 보다 엄정한 조사와 법적조치가 필요하다. 일벌백계를 통해 훗날을 위한 경계로 삼아야 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