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언론인
조국 법무부 장관의 전격 사퇴는 자신의 거취가 대통령과 여당에 계속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과, 6개월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총선거를 의식한 게 아닌가 싶다. 정치적으로는 일종의 '선제적 사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검찰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당위성까지 사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검찰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위해 봉하에서 5시간을 달려 대검 청사에 도착했을 때,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과 홍만표 기획관이 창 밖을 보며 웃던 그 사진. (그들은 "대통령이 아니라 운집한 취재진을 보고 웃었다"고 해명했다. 운집한 취재진 처음 봤나? 국민을 우롱한 변명이다). 그 사진은 대한민국 검찰 오욕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촛불 국면에서 윤석열 총장으로 대표되는 '골수 검찰주의자'들이 볼 멘 소리를 했을 수도 있다는 점,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골인'(구속의 검찰 은어)시켰을 때나, 박근혜-이명박사건 파헤칠 때, 삼성바이오로직스 압박해들어갈 때 박수친 건 뭐고 지금은 뭔가. 그때는 정의의 화신이었고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인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은 총장 개인이 아니라 검찰 '조직'에 대해 분노한다는 걸 뼈에 새겨야 한다. 김학의 사건, 벤츠검사 사건 등등 조직 내부 일과 조직 밖의 일을 처리해온 검찰의 천양지차, 그 불의를 규탄하는 것이다.
올 가을 다시 촛불을 보면서 소름끼쳤던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박근혜탄핵촛불 이후로도 계속 무섭게 진화해왔다. 모이는 것도, 구호도 자발적으로 정한다. 집회 때 마다 다음 번 집회의 에너지가 자가발전돼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더니 마침내 숨 고르기까지 자율적으로 했다.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통첩하고 일단 정리했다. 집회 지도부? 없었다. 국민들끼리 시간과 이슈 정하고 자기 돈 써가며 모인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오로지 자신들이 정한다. 수 백만 명이 이렇게 하는 것, 과연 가능하리라 상상이나 해본 사람이 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유례는 커녕 그런 조짐의 단초라도 있었는가. 왜 이런 상상불허의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을까. 필자에게는 동학 횃불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그런 전통과 힘이 있었음을 우리 모두 잠시 잊고 있었을 따름이다.
집권세력은 물론이고 모든 정파는 "검찰개혁"이라는 구호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한다. "국민 권리, 신성불가침이라고 당신들이 써놓은 그 주권을 존중하라"는 경고 앞에 거듭 겸손해야 한다. 그러니 조 장관은 사퇴했지만, 청와대건 국회건 검찰이건 기존 정치문법에서 습관적으로 하곤 했던 '출구전략'이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출구전략이란, '이 정도에서 이 정도 수를 두면 빠져나올 수 있다'는 상황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서초동십자가는 그런 정치공학적 계산으로는 이미 계가(計家)가 안되는 바둑이다. 기존 정치문법으로 해석하려 들면 정치권과 국민간의 소통은 계속 꼬일 수 밖에 없다. 조 장관 사퇴로 국면이 해결됐다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간단하다. 검찰 스스로 특권의식을 버리는 것이다. 법령개정이나 조직개편은 말 그대로 보완책일 뿐, 문제는 특권의식이다. '감히 누가 우리를 건드려'라는 특권의식. '알아서 할테니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말라'는 그 특권의식. 16년 광화문에서 깨진 건 국정농단이었고, 19년 서초동에서 깨지고 있는 건 일제강점기 이래 100년 간 구축된 '법조 철옹성'의 카르텔과 특권의식이다. 이건 진영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실감나지 않겠지만, 시대가 확실히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국민 무서운 줄 깨달으라는 두 번째 명령이자 최후통첩이다. 그 통첩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초동십자가는 단순히 조 장관 일가가 안쓰러워서만이 아니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촛불정부가 반환점을 돌 무렵 다시 또 촛불이 타올랐다. 기본적으로는 촛불정부가 바로 가도록 지키겠다는 거지만, 3년 전 탄핵촛불과는 성격과 의미에서 훨씬 복잡다양하다. 숙고할 거리가 많다. 숙제하면서 실력이 늘어야 진짜로 숙제를 푸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이제부터다.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