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새까맣게 탄 종이 페이지들이 1피트 높이로 쌓인 일이 있었다. 1986년 4월29일 로스앤젤레스 공공 도서관의 화재 사건. 40만권의 책은 한 줌의 재로 남고 70만권의 책은 훼손됐다. 프랑스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실린 1860년 도판 ‘돈키호테’, 천문학과 화학, 생물학, 의학, 금속공학 등에 관한 책 9000권, 그리고 셰익스피어에 관한 모든 책들…. 30년 뒤 저자는 당시 사건을 파헤치며 도서관이 왜 우리 마음과 정신, 영혼의 본질인지를 글로 입증한다.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수전 올리언 지음|박우정 옮김|글항아리 펴냄
부제는 ‘시민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문헌학자인 저자 눈에 서울은 내부적으로도, 근교 도시와도 온통 갈등 상태에 놓여있다. 서울은 재개발, 재건축을 둘러싼 이해 충돌과 빈부 동네 간 반목이 두드러진다. 불필요하거나 미관상 저해되는 혐오 시설들은 인근 도시로 밀어낸다. 빈민촌 10여만명을 성남 원도심에 보낸 것이 그러했고, 화장장을 고양시 덕양구에 세운 것이 그러했다. 서울과 근교까지 아우르는 탐사로 저자는 ‘대서울’ 갈등의 본질을 짚는다.
갈등 도시
김시덕 지음|열린책들 펴냄
감정적 공포심을 조성하는 것도 매질만큼 심한 ‘폭력’이다. 동료들 앞에서 큰 소리로 꾸짖는 상사,경제력 없는 아내를 무시하며 비난하는 남편, 훈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냉대하는 부모…. 독일 뮌헨대의 교수인 저자는 이들을 ‘감정 폭력’의 가해자로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원인 모를 불안과 우울, 무기력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대체로 감정폭력의 희생양인 경우가 많다.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빗발치는 폭언과 무시, 조롱을 그는 심각한 ‘가해’라 주장한다.
감정 폭력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손희주 옮김|걷는나무 펴냄
한국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됐다는 설은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한 계통수 증명으로 이를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고추는 1960만년 전 이미 지구상에 있었다. 매콤달콤한 고유의 맛은 맵기만 한 일본식 스타일과는 뿌리부터 다르다. 고추를 중심으로 저자는 삐뚤어진 한식 역사들을 바로 잡는다. 문자 없는 요하문명권에서 출발한 원형부터 맛과 영양, 가치를 다룬다. 한식은 곧 한국인들의 정체성을 깨워주는 인문학적 보고로 읽힌다.
한식의 인문학
권대영 지음|헬스레터 펴냄
지난해 노벨문학상 시상이 취소되면서 세계 출판계의 ‘눈’은 맨부커상을 향했다. 당시 제정 50주년을 맞은 맨부커 주최 측은 사상 최초로 북아일랜드 작가 애나 번스의 이 작품을 선택했다. 소설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1970년대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유무형 폭력에 노출된 18살 여성 주인공의 입말로 불신, 피해망상, 인권 유린이 만연한 사회를 짚어낸다. 무성한 정치적 논의로 가려진 수많은 성과 소수자 문제는 이 시대상을 거울처럼 비춘다.
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홍한별 펴냄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지난 20년 평론집이다. 1999년 개봉한 ‘벨벳 골드마인’부터 2019년 개봉한 ‘기생충’까지, 한 권으로 묶었다. 214편의 영화를 연대기식으로 다룬 208편의 글은 영화명과 영화인명만 모두 1700여개다. “종이 위 펼친 영화 이야기는 영화 자체보다 작품 안팎의 정경, 심경, 색상, 냄새를 자아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추천사는 페이지수 944쪽에 달하는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영화 자체보다 선명한 영화의 기록이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