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혁 밸류컴포짓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이나 터치스크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일을 해결하고자 진동점자를 개발했다. 시각장애인의 사정을 알기 위해 점자를 독학으로 익힌 그는 비장애인들도 점자를 일종의 제2외국어처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정규교과에서 점자나 수어를 배운다면 적어도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수고를 하는 만큼은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은 90%가 넘는다. 시각장애인이 변호사가 되거나 명문대에라도 진학하면 그 자체로 기사가 된다. 아직 시각장애인 출신 국회의원은 손을 꼽는다. 지금도 시각장애인의 직업을 안마사, 역술인 등으로 한정짓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한켠에선 4차산업혁명시대에 음성스피커가 집에 있는 모든 가전기기를 제어해주는데 점자는 음성정보에 밀려 사라질 것이라고까지 얘기한다. 점자를 읽을 줄 아는 시각장애인도 몇 없는데 불편하게 점자블록은 뭘 그리 많이 만들어 도시미관을 해치고, 역마다 도서관마다 점자촉지도를 설치해 통행을 불편하게 하냐고 말한다.
시각장애인들은 말한다. 점자가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의사전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초적인 의사전달방식이라고. 음성정보는 말 그대로 대체정보에 불과하다. 비장애인들이 아무리 오디오북이 유행한다고 활자책을 안 보지는 않는다. 말과 글은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이 높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배워도 사용할 환경이 되지 않거나 상당수의 시각장애인이 후천적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블록대로 가다가는 도로 한가운데로 가거나 지하철 선로로 떨어지는 일들을 겪기도 한다.
보행자 좋으라고 설치한 볼라드를 시각장애인들은 ‘거리의 지뢰’라고 부른다. 공공시설에 있는 점자 안내는 필요한 곳에 없거나 엉뚱하게 설치된 것 투성이다. 위로 올라가는 방향인데 점자는 아래를 가리킨다는 얘기로는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뉴스도 되지 못한다.
가장 기본이 될 화폐도 점자가 아닌 볼록인쇄와 길이 차이로 지폐 구분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폐가 낡으면 1만원권과 1천원권, 5천원권 구분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물건값를 많이 내거나 거스름돈을 잘못 받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고 있다. 하지만 목소리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화폐에 점자를 넣자는 목소리는 매번 묻히고 있다.
몇 달 전엔 한 시각장애인단체가 정부에 EBS 수능교재 대체자료가 맞춤법이 맞지 않고 오류투성이라며 사용을 못할 정도라고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교재 제작기관은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보다 음성자료를 더 선호한다”라고 답변한게 전부다. 그나마도 정부에서 대체자료를 지원하는 수능이 이 정도지 일반교과는 오롯이 학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해야 한다.
점자를 손으로 읽어본 적 있는가. 6점을 구분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는 모습을 관찰한 적은 몇 번이나 될까. 여전히 비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을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만 대하고 있다. 우리가 여성을, 어린이를, 노인을, 청년을 대하듯이, 당사자로서 그들이 정책과정에서 제작·검수·관리에 참여하고 결정해야 한다.
11월4일은 점자의 날이다. 1926년 오늘 박두성 선생은 초성·중성·종성·숫자·문장부호 모두 63개의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했다. 얼마나 기념비적인 일이냐면 한글 점자의 이름을 훈맹정음, 박두성 선생을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지금도 부를 정도이다. 박두성 선생은 그 암혹했던 일제강점기조차 시각장애인과 함께 살고자 했다.
박용준 공동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