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 낫과 망치와 별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의 삼색 국기가 올라갔다. 지난 세기 인류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을 경험했지만 그 세기가 저물 무렵 이 첫 실험의 실패도 목격해야 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사라지고 새로운 러시아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타국의 사람들은 충격과 호기심으로 이 세계사적 사건을 지켜보았고 러시아인들은 혼돈과 기대, 희망과 절망의 시간 속에 던져져 있었다.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동안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러시아인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두 번의 방문
시카치알랸 마을은 왜 나를 두 번이나 부른 것일까? 그곳의 무엇이 나를 끌어당긴 것일까? 물론 첫날은 하바롭스크에서 출발이 늦어진데다가 무작정 움직이다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마을 가까운 쪽의 암각화들을 보았고 박물관도 둘러보았기 때문에 ‘관광’으로서는 나름 알찼던 셈이다. 그런데도 왠지 허전하고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마을의 겉은 보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빠졌다. 암각화들을 보여 준 발렌틴 씨, 박물관을 안내해 준 율랴 씨 외에는 마을 주민들과 대화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아쉬움도 컸던 데다가, 또 다른 뭔가의 기운에 이끌려 나는 이 고대의 시간이 남아 있는 마을을 다음날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가쌴 절벽 지점에서 암각화를 찾고 있는 율랴 씨와 남편 안드레이씨. 사진/필자 제공
마을 어귀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복합체 건물이 보인다. 주민들이 ‘콤플렉스’라 부르는 이 건물에는 유치원, 학교, 행정기관, 문화센터, 의료센터 그리고 나나이족의 민속박물관이 있다. 첫째 날 암각화 지점에서 우연히 만난 단체관광객 안내자 율랴 샤르꼬바 씨는 이곳에서 일한다. 그날 단체손님 안내를 끝낸 그녀가 자신의 자유 시간을 써가면서 나에게 박물관 안내를 해 준 것은 참으로 고마운 호의였다.
작은 박물관에는 나나이족의 경제활동과 일상생활, 샤머니즘 종교문화와 예술행위 등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부의 결혼식 예복도 있다. “결혼하는 신부는 옷에 새를 수놓아 자식 낳기를 기원합니다. 많이 낳고 싶으면 그 수만큼 많은 새를 수놓지요.” 이들의 생계수단이었던 낚시와 사냥 도구보다 흥미롭게 눈에 띈 것은 생선 표피로 만든 옷이다. 우리의 장승과 비슷한 조각상들도 보이는데, 거리에, 집들 옆에 세워졌었다고 한다. “이것들은 영(靈)을 형상화한 거예요. 주인이 죽은 후 그의 친척들이 천장과 지붕 사이 다락방에서 발견했는데, 어떤 이들은 지금도 영혼이 그 안에 산다고 생각하지요.” 종교가 허락되지 않았던 소련 시절, 지붕에 이런 영(靈)들을 숨겨 두고 은밀히 숭배했다는 게 율랴 씨의 설명이다.
시카치알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네 개의 형상. 혼령을 묘사한 것으로, 가정집 지붕 밑의 다락방에서 발견되었다. 사진/필자 제공
신화와 전설의 시공간
시카치알랸의 암각화 지점은 두 곳이다. 첫날 본 마을 쪽의 지점과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가쌴 절벽이라 불리는 지점이 그것이다. 대부분은 마을에 가까운 아래지점만 보고 간다. 다음날 율랴 씨의 일정상 가능성이 불투명했지만, 아침에 오게 되면 일단 연락하라는 말만 믿고 무작정 아침 일찍 도착했다. 버스가 아침에 한 대, 저녁에 한 대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행히, 그녀가 콤플렉스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상류지점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러시아인인 그녀의 남편 안드레이 씨가 시간을 내 모터보트를 운전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르 강변의 절벽들 중 하나. '졸로 마마(돌 할머니)'와는 조금 떨어진 곳이다. 사진/필자 제공
아무르 강의 물살을 가르며 배가 달린다. 강 건너편에서 낚시를 하던 주민이 손을 흔든다. 그는 우리를 사진 찍고 나는 그를 사진 찍으며 손을 흔든다. 약 20~30분가량을 달리니 암벽들이 물가에 늘어서 있다. ‘졸로 마마’(나나이어로 ‘돌 할머니’)라는 샤만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샤만으로 여겨지는 이 ‘돌 할머니’는 신화적 인물이기도 하다. 세 개의 해 전설에 나오는 남매 호다이와 먀멘디가 다른 버전의 창조신화에서는 카도(역시 두 개의 해를 쏘아 없앤다)와 그의 아내 줄치 그리고 돌 위에 그림을 그리는 처녀 마밀쥐로 등장하는데, ‘돌 할머니’ 샤만이 바로 마밀쥐의 형상화로 이해된다. 나나이족은 이 ‘돌 할머니’ 암석을 그들의 여성수호자 겸 내세의 여주인과 연관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샤만 바위 졸로 마마(돌 할머니, 우측 큰 바위)와 이를 호위하는 주변 바위들. 사진/필자 제공
샤만 할머니 바위 옆에는 7명의 딸 바위도 있었지만 사라졌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민간에서는 ‘졸로 마마’가 저승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고 믿어졌고 이는 지명과도 관계가 있다고 쓰여 있다. ‘시카치알랸’이라는 마을 이름은 예전에 ‘사카치-알랸’처럼 들렸는데, 나나이어로 ‘사카치’는 ‘알고 있었다’, ‘알아보았다’라는 뜻이고 ‘알랸’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들 사이의 선, 경계’를 뜻한다는 것이다. 즉, 사카치-알랸은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곳’이라는 의미의 지명이 된다.
조상들은 ‘돌 할머니’께 공물을 바쳤고 후손들 역시 배를 타고 그 곁을 지날 때 몇 루블이라도 놓고 경배를 한다. 나나이 출신인 율랴 씨가 배를 붙잡고 있는 동안, 부부의 대표로 남편인 러시아인 안드레이 씨도, 한국인인 나도, 졸로 마마에게 경배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돌 할머니’인 샤만 바위는 곁의 여러 바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아무르 강가에서 함께 벼랑을 이루고 있다.
큰 사슴(엘크)이 그려진 암각화. 마을 박물관에 이 암각화를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필자 제공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아는 이곳에는 큰 사슴(엘크)과 샤만이 썼던 마스크, 용의 모습도 바위에 남아 있다. 이곳은 현실의 자연과 신화의 세계가 교차하고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이 오가는 시공간이다.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 죽고 싶다고 했던 마밀쥐, ‘사람은 태어나야 하고 죽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죽어간 마밀쥐가 현무암에 열심히 그림을 그린 덕분인지, 시카치알랸에는 암각화 하나하나에 담긴 신화와 전설들이 아무르 강물처럼 넘실거린다.
흥미롭게도, 꼬르폽스키 마을에서 본 헤흐찌르 산맥에 관한 전설도 있다. 골드(나나이족)인 ‘헤엨치르’라는 이름의 남자가 샤만으로 부름 받아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했는데, 후에 그가 이룩한 마을이 사라지고 헤엨치르라는 이름은 ‘헤흐찌르’로 바뀌었다. 그후 카자크인들이 나나이족 마을이 있었던 곳뿐만 아니라 전체 산맥을 헤흐찌르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샤만의 마스크가 그려진 암각화. 사진/필자 제공
아이들과 두 선생님
마을로 돌아오니 점심때다. 하바롭스크로 돌아갈 버스는 저녁때 있다. 콤플렉스 건물 식당은 다른 지역에서 여름캠프를 온 러시아 청소년들로 왁자지껄하다. 개별 판매가 안 되는 식당인데, 율랴 씨 덕분에 그 학생들과 똑같은 점심을 사 먹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사실, 이방인으로 마을의 겉면에서 얼쩡거리던 내가 마을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 든 것은 여름방학 특별활동 수업을 받으러 콤플렉스에 온 마을 어린이들과 함께 논 다음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남의 수업을 방해하면 안 되니 아이들이 만들기 수업을 할 때 우두커니 지켜보던 나는, 아이들이 게임 수업에 별 흥미를 안 보여 선생님들이 고전하자, 순간 게임에 뛰어들었다. 이방인의 참여가 신기했던 아이들은 재밌어하며 게임에 적극적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아이들이 귀여워서 함께 놀았을 뿐인데, 점심시간 후 특활 교사로 변신한 율랴와 한티족 출신인 따찌야나 까찰로바 씨에게 나의 마음이 가 닿은 듯하다. 게다가, 콤플렉스에서 오가며 마주친 다른 주민들도 오전보다 마음으로 대하는 느낌이 든다. 한나절 내내 콤플렉스에서 얼쩡거리니 그럴 수도 있겠다. 어떤 분이 판매하던 기념품을 선물로 주신다. 하지만 우리도, ‘우리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노는 이방인에게 좀 더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진심은 통하는 법. 어디서든 사람과의 만남이 내게는 여행의 핵심이다.
마을 어린이들이 콤플렉스에서 따찌야나 선생님 지도 하에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시카치알랸의 암각화 바위들은 매년 위치가 바뀐다. 봄에 아무르 강의 얼음이 녹으면서 물길이 바위들을 옮기기 때문이다. 7월 23일의 여름, 율랴 말에 의하면 물이 내려가고 있어 암각화들의 절반쯤이 물속에 있다고 한다. 강물 때문에 봄과 가을에만 보이는 암각화들도 있다. 바위들이 강물에 떠밀려 오다보니 뒤집혀져서 그림이 거꾸로 되거나 옆으로 누운 것들도 있다. 바위들은 마모되고 변형된다. 강가의 흙이 올라와 바위가 그것을 희뿌옇게 뒤집어쓰기도 하고 비가 와 다시 씻겨 내려가기도 한다. 어찌 이렇게 우리네 인생과 흡사한가!
가쌴 절벽 지점의 큰 사슴(엘크) 암각화를 본뜬 그림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필자 제공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