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20대 국회의 최대 충돌 지점으로 작용했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의 본회의 부의가 다가오면서 전운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패스트트랙을 둔 여야의 신경전이 치열해지면서 지난 4월의 '동물국회'가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패스트트랙의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준영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골자로한 선거제도 개혁안은 오는 27일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이며 내달 3일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 사법개혁안도 본회의에 부의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12일 "정치개혁 및 사법개혁 관련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은 12월 3일 이후 본회의에 상정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 의장은 25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도 "최종적으로는 여야 3당 간에 협의해서 합의해달라. 기다릴 수 있는 한 최대한 기다리겠다"면서도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엔 여러 차례 말했 듯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는 27일을 시작으로 패스트트랙 법안들이 순차적으로 본회의 부의를 예고하고 있지만 정치권 상황은 녹록치 않으며 전면전까지 예고하고 있다. 우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를 위한 단식에 돌입하며 배수진을 친 상황이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을 문재인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법안으로 규정하고 적극 저지를 표명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 25일 황 대표의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날 국회는 사실상 '떴다방 다당제' 수준이다. 이런 국회가 과연 힘을 갖고 정부를 견제할 수 있나"라며 "공수처와 연동형 비례제의 패스트트랙 원천 무효를 선언하고 불법 사슬을 끊어내십시오"라고 촉구했다.
이어 "90일간 충분한 숙의 기간을 보장하는 안건조정위원회에서도 날치기 통과시킨 선거법이다. 27일 부의도 족보없는 불법 부의다. 치유될 수 없는 하자로 점철된 법을 고집하면 안 된다"며 "억지로 통과시키고 나중에 불법성과 무효가 확정되면 얼마나 더 큰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겠나"라고 강조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패스트트랙에 대한 강행 의사를 계속해서 표명하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18일 의원쵱회 당시 "국회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 올 것 같다"면서 "이렇게 가다보면 지난번 '동물국회'가 또 도래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된다. 가능한 이번 정기국회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임하겠다"고 의지를 다진 바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황교안 대표를 향해 "지금이라도 단식을 풀고 (패스트트랙)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달라"면서도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에 대해 전혀 입장 변화가 없다면 국회법 절차에 따라서 민주당으로서는 대응해 나가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강행의지를 시사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불법 패스트트랙 원천무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야, 패스트트랙 대응 전략은?
결국 한국당이 합의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은 본회의를 통한 표 대결까지 구상하고 있다. 민주당은 표 대결을 통한 패스트트랙 법안의 통과를 자신하고 있다. 홍영표 전 원내대표는 최근 "지금 148명의 의원을 확보하면 통과가 된다. 한국당과 유승민 대표계로 분류되는 변혁, 이쪽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이 169명"이라며 "적어도 169명이 함께 표결에 참여해서 통과시킬 어떤 합의안을 도출해내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를 위해선 현재 148석 확보가 필요하다. 민주당 129석에 패스트트랙 법안에 동조하고 있는 정의당 6석을 합하면 135석이된다. 여기에 민주당 출신의 문희상 국회의장과 무소속 손혜원 의원을 합하면 137석이 된다.
결국 민주당은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의원들로부터 11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의 선거법 합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이들 사이에는 의석수 확대라는 걸림돌이 있다. 민주당은 의원정수 300석을 주장하고 있지만 야3당에선 330석 혹은 360석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당 역시 걸림돌이다. 내달 2일이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인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충돌 조짐을 보이는 것은 민주당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다 하더라도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가능성이 점쳐지기 떄문이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본회의 안건에 대해 재적 의원 3분의 1이상(99명)의 서명으로 시작되는데 한국당 의석수는 108석으로 단독으로 개시가 가능하다. 또 이를 막기 위해선 더 이상 토론에 나서지 않거나 국회 회기가 종료, 혹은 재적의원 5분의 3(177명)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홍영표 전 원내대표의 계산에도 필리버스터 저지 숫자엔 미치지 못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끝까지 법안처리를 막아내기 까진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필리버스터 자체가 패스트트랙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당 내부에서 '의원 총사퇴'가 거론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