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 중인 HDC현대산업개발이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에 '내용증명'까지 보내며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금호그룹 재건에 쓰일 아시아나 항공 '구주' 가격 수준을 놓고 줄다리기 중인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연내 인수를 마무리 짓겠다는 목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8일 금융·항공업계에 따르면 HDC는 지난 26일 금호산업과 매각 주간사인 KDB산업은행에 아시아나의 매각 의지가 강하지 않다며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지난 7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한 후 시작된 협상에 내용증명까지 등장하자 업계와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인수 과정이 험난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내용증명은 강제력이나 법적 효력은 없지만 향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문서다. 협상 결렬 시 HDC가 금호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카드'가 되는 셈이다. 금호산업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단순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무리한 요구가 계속되면 매각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경고'로 볼 수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인수·합병(M&A) 협상이 결렬되면 투입한 비용을 물어달라며 인수자나 매각 주체가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있다"며 "HDC도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인수전은 협상 시작 전부터 금호그룹 재건에 쓰일 구주 가격이 쟁점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내용증명 발송도 금호산업이 높은 구주 가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수는 금호산업이 보유한 지분(31.05%)인 구주와 아시아나가 발행하는 보통주인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구주 매각 대금은 금호산업으로 흘러 들어가고 신주 자금은 아시아나에 돌아가 항공사 정상화 작업에 쓰일 전망이다. 즉 구주를 높게 받을수록 금호산업은 그룹 재건에 쓰일 자금을 더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금호산업은 구주 가격을 높여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가지고 있는 지주회사 금호고속의 차입금을 갚는 데 쓸 것으로 보인다. 금호고속은 내년 3월 말 만기가 되는 산은 대출 1300억원과 3700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해야 한다. HDC가 제시한 가격만 받는다면 매각 후에도 차입금을 모두 갚지 못하게 된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추진 중인 금호산업이 '구주' 가격을 두고 HDC현대산업개발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HDC는 입찰가 2조5000억원 중 구주 가격으로 3000억원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규 HDC 회장도 최근 이동걸 산은 회장을 만나 구주 매입가 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발채무 등 돌발 변수를 고려했을 때 이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금호산업은 당초 7000억원의 구주 가격을 기대했던 만큼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고려했을 때 4000억원 이상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HDC의 제시가는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된 지난 7일 종가 기준 아시아나 주가보다도 낮다. 이날 아시아나 주가는 5310원이었는데 보유 지분 31.05%로 계산하면 약 3642억원이다. 이 때문에 HDC가 구주 가치를 지나치게 저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처럼 구주 가치를 두고 양측의 의견이 갈리면서 올해 안으로 매각을 마무리하겠다는 금호산업의 목표에도 차질이 생겼다. 양사는 내달 12일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하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현재로서는 이 또한 불투명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HDC는 구주 가격에 대해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태도를 관철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금호산업도 쉽게 물러서진 않겠지만 2조5000억원이라는 인수가를 제시하는 곳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