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국경, 세대 초월한 U2 관객들 “이제 여한 없어요”

결성 43년 만에 서울 고척돔, U2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①
공연 시작 5시간 전부터 긴 줄…티셔츠부터 모자, LP까지 품절 대란
20대부터 4050대, 외국 관객까지 “인생 버킷리스트 지웠어요”

입력 : 2019-12-09 오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수십년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여한이 없어요….”
 
8일 오후 3시반 경, 서울 구로구 고척돔 앞. 조슈아트리가 빨갛게 새겨진 셔츠를 펼치던 제레미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2000년 경, 프랑스에서 서울로 건너온 그는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 록 밴드 U2의 열혈 광팬. 묵은 세월의 짐을 훌훌 털어낸 듯 백발을 휘날리며 말을 이었다. “서울살이 20년 만에 드디어 제 버킷리스트를 지우게 됩니다. ‘조슈아트리’ 앨범이 나온 해(1987년)부터 시작된 이 모든 여정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에요!”
 
프랑스인 제레미씨(왼쪽)과 김아현씨. 제레미씨는 지난 20년 간 서울살이를 하며 U2의 내한 공연을 꿈꿔왔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제레미씨가 U2를 안 시점은 1987년이다. ‘조슈아트리’ 앨범이 막 발매되던 시기. U2가 아일랜드를 벗어나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 이 앨범은 그의 마음을 휘저었다. 신비롭고 서걱거리는 디엣지의 기타와 아련하게 다가오는 앰비언트 뮤직 거장 브라이언 이노의 신시사이저, 광활한 자유의 땅을 거닐며 보고 느낀 사색과 탄압에 대한 저항 메시지…. “그 앨범을 계기로 거대한 U2 세계에 빠졌죠. 지금은 밴드의 모든 앨범을 다 갖고 있어요.” 옆에 서 있던 부인 김아현씨는 “한국과 인접한 국가에 U2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남편은) 늘 아쉬워하며 기원했다”며 “오늘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다”고 거들었다. 외벽 초대형 포스터 사진 속 U2 멤버들이 황량한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 서서 이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U2 내한 공연 5시간 전, 서울 고척돔 앞에 굿즈를 사기 위한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세계적인 록밴드 U2가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이날. 이 역사적인 현장의 열기는 공연 시작 5시간 전부터 대단했다. 제레미 부부를 맞닥뜨린 인근에는 1시간 반 남짓 수백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돔을 잇는 차도까지 뚫고 나간 행렬은 U2 ‘굿즈(머천다이즈)’를 사기 위해 몰려든 인파. 모자와 텀블러, 일부 티셔츠는 오픈 30분 만에 전량 매진됐지만, 행렬은 해질녘까지 줄어들지 않았다. 인근 한정판 음반을 판매하는 부스에선 오픈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조슈아트리’ LP 100장이 전량 매진됐다. 이날 현장에선 아이를 동반한 가족부터 20대 청년들, 40~50대 올드 팬, 다양한 국적인에 이르기까지 국경, 세대를 초월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오후 2시 반, 구일역 앞에서 만난 이탈리아계 회사의 한국사무소 주재원인 마르코씨는 한국인 친구 2명과 함께 U2를 보러온 참이었다. 그는 “1980년대 고국에 있을 때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U2를 알게 됐다”며 “하지만 U2는 새로운 음악을 낼 때마다 매번 새로운 세대를 통합했다. 2004년 나온 곡 ‘Vertigo’는 내 중학교 시절을 관통하는 주제곡 같은 노래”라 했다. 호주에서 왔다는 로날드 리우씨, 앤써니 애드워즈씨, 캐나다인인 멀 터너씨는 기자 앞에서 즉석 팟캐스트를 열듯 토크판을 벌였다. 
 
호주에서 왔다는 로날드 리우씨(왼쪽부터), 앤써니 애드워즈씨, 캐나다인인 멀 터너씨는 즉석 팟캐스트를 열듯 U2 토크를 벌였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비틀스가 세계 최고의 밴드인 것은 맞지만 그들은 얼마 안 돼 해체 했잖아요? 그들에 비하면 U2는 43년 해체 없이 활동한 밴드계의 현존하는 역사죠. 그래미 22회 수상, 1억8000만장의 앨범판매, 게다가 가스펠, 록, 팝, EDM까지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는 장르적 실험. 근데 전 U2 공연 처음이에요! 하하. 오늘 버킷리스트 지울거예요.”(멀 터너) “전 이미 호주를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열린 공연을 몇 차례 봤는데 대단했어요. 빈곤과 평화, 아프리카, …. 수많은 사회적 메시지가 그들의 음악, 이미지 안에서 떠다니죠. 살짝 스포를 하자면 이따 마지막 쯤 보게 될 ‘울트라 바이올릿’을 기대하세요. 세계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할 거예요. 평등에 관한 이야기죠.”(로날드 리우)
 
전체적으로는 ‘U2 세대’라 불리는 40~50대 팬들이 즐비했다. 아내, 두 아이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40대 박필진씨는 “깔끔한 사운드를 내는 디엣지의 기타를 좋아한다”며 “밴드 멤버들끼리 사운드를 빌드업 시켜가는 과정들도 좋다. U2의 베스트앨범 이후 세대라 진정한 U2 세대라 볼 순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 상징적인 ‘조슈아 트리’ 앨범을 전곡으로 듣는 것이 무척 설렌다”고 했다.
 
유튜브 심해에서 보던 U2 공연을 현실 공간에 맞닥뜨린 이정준씨(28)와 이석준씨(27).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날 20~30대 청년들도 눈에 꽤 많이 띄었다. U2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이 세대들은 유튜브 바다를 헤엄치며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간다. 유튜브 심해에서 보던 U2 공연을 현실 공간에 맞닥뜨린 이정준씨(28)와 이석준씨(27)는 포토북까지 사며 설렘을 드러냈다. 
 
“보노(U2보컬이자 프론트맨)가 부친상을 당한 뒤 슬래인 캐슬에서 한 공연을 유튜브로 봤어요. 개인적 아픔이 있는데도 열정적으로 절창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고 뜨거웠어요. 오늘 'With or without you', 'Beautiful Day', 'One'을 실제로 들을 수 있다니 기대돼요….” 
 
딱 한 줌 남아 있던 오렌지 빛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2만8000여 관객들 걸음이 둥근 돔 으로 향하고 있었다. 긴 기다림의 뜨거운 열망이 이제 U2를 불러낼 시간이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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