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판사 재판 복귀에 "비정상적"…비판 잇달아

"아무도 재판받으려 하지 않을 것…신뢰 무너뜨려" 지적
"탄핵 또는 징계 대상으로 삼았어야"…정치권 유감 표명

입력 : 2020-02-18 오후 4:24:58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사법 연구 업무로 발령받았던 판사들이 재판부에 복귀하는 것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을 사법 연구로 발령한 사유와 비교해 일관성이 없고, 탄핵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재판 복귀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정의연대 법률지원단장 신장식 변호사는 18일 "법관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 하도록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에게 국민 중 아무도 재판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원 스스로 사법 신뢰를 무너뜨리는 조처"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서면 심리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라며 "법정에 서는 것만이 재판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반 공무원도 아니고 신분이 보장된 판사인데, 대법원으로서는 업무에서 배제해 마냥 방치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면서도 "1심 판단을 안 받은 판사까지 재판 복귀를 결정한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고, 분명히 논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러한 사례가 재발할 것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법원 내부 규정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무죄 추정이란 헌법상 원칙에 따라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난해 재판 업무에서 배제된 사유를 고려하면 일관성이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3월 "피고인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 법관이 다른 한편으로 재판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의 사법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부장판사 8명에 대해 사법 연구 업무로 발령했다. 이에 따른 이들의 사법 연구 기간은 오는 29일까지였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검찰 수사자료를 법원행정처에 누출한 혐의로 법정에 선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의 재판부 복귀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국민 신뢰를 저버리는 선택을 한 사법부에 실망이 크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복귀하는 법관 7명 모두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고, 심지어 3명은 1심 판결조차 받지 않은 상황"이라며 "1년 전 사법농단이 불거졌을 때와 상황적으로 바뀐 것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사법부 내에서도 재판 개입 의혹이 불거진 판사들은 법관 탄핵의 대상이라거나 징계의 대상으로 삼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사법부 자체 징계 등 자정적 조치가 불충분해 국민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며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판 개입 혐의를 무죄라 선고한 재판부는 '재판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는 징계 사유에 해당하고 위헌적 행위'라고 분명히 밝혔다"고 꼬집었다.
 
또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의 재판 업무 복귀 결정에 유감을 표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시금 촉구한다"며 "아울러 사법농단 같은 국민농락, 헌법유린 사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위헌적 행위는 했으나, 죄는 없다'는 비상식적인 무죄 판결에 이어 당장 법복을 벗어야 할 판사를 다시 법정에 세우겠다는 선언"이라며 "사법부의 비정상적인 행보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심지어 아직 1심의 판단을 받지 않은 판사들도 다시 복귀하게 되는데, 재판 결과가 나기도 전에 벌써 무죄라고 셀프 판결이라도 내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위헌적 행위를 하고도 처벌받지 않은 채 심판관의 위치에서 다시 법의 엄중함을 운운한다면 어떤 국민이 그가 내린 판결을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법원이 똘똘 뭉쳐 제 식구 감싸기에 골몰하는 동안 사법부의 신뢰는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법원이 셀프로 재판한 결과와는 별개로 사법농단을 벌인 법관들은 절대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민심이다. 국회가 다시 법관 탄핵에 나서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검찰 수사자료를 법원행정처에 누출한 혐의로 법정에 선 조의연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7일 심상철(광주시법원)·이민걸(대구고법)·임성근(부산고법)·신광렬(사법정책연구원)·조의연(서울북부지법)·성창호(서울동부지법)·방창현(대전지법) 부장판사를 다음 달 1일 재판부에 복귀시키는 인사조치를 했다. 다만 이태종 부장판사의 사법 연구 기간은 오는 8월31일까지 연장됐다.
 
대법원은 "사법 연구 기간이 이미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형사판결이 확정되기까지 경우에 따라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민걸 고법 부장은 사법 연구 등으로 2년 넘게 재판 업무를 담당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와 같은 사정과 본인의 희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잠정적인 조치인 사법 연구를 유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이들 중 임성근·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는 최근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송인권)는 지난 14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던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가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한다고 해석될 여지는 없다"면서 "오히려 자신의 지위나 친분을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로 판단된다"고 판결했다. 
 
또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이란 이유만으로 직권남용죄에 따른 형사처벌을 지게 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돼 허용되지 않는다"면서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는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지위를 이용한 불법 행위로 징계 사유에 해당할 여지는 있지만,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도 지난 13일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수사기록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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