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우리 드럼에 힘 살짝 빼보는 거 어때요? 오케이? 유후~ 아이 러브 유!”
14일 저녁 8시경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무대를 꽉 채운 거대 몸집의 그가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26)의 말투를 흉내내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우스꽝스러운 성대모사를 자처한 이는 세계적인 드럼 연주자 에런 스피어스(43)다.
글로벌 드러머를 꿈꾸는 한국 수강생 2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자리에서 그는 “음반과 비슷하게 절제된 사운드를 요구하는 뮤지션이 있는가 하면 어떤 뮤지션은 과한 역동성,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제공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KT&G 상상마당과 리듬스토어, 클래스온이 기획한 드럼클리닉 행사로 한국을 찾았다.
“그란데와 달리 어셔는 곡의 원형만 저해하지 않으면 경계를 넘어설 정도의 역동성, 바이브를 원해요. 곡의 통일성, 잘 짜여진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어셔, 아리아나 그란데 드러머 에런 스피어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스피어스는 21세기 팝에 새 역사를 쓴 드러머로 평가된다. 어셔, 그란데, 릴 웨인, 백스트리트보이즈, 앨리샤 키스, 레이디 가가 등과 작업했다. 특히 어셔와의 인연은 음악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그 전까지 교회 밴드로 활동하던 그는 2003년 어셔와 미국 투어를 돌며 세계적인 팝 드러머로 성장하게 된다. 이날 행사에 앞서 대기실에서 만난 스피어스는 “어셔와 일을 하면서 내 자신, 스스로를 믿는 것의 가치를 느꼈다”며 “무엇이든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다는 것,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5년에는 세기의 무대로 꼽히는 어셔, 제임스 브라운(1933~2006)의 ‘그래미어워즈’ 합동 무대에 함께 올랐다. 그는 "아직까지 당시의 파격적인 무대가 생생하다"고 했다. 자신의 드럼 비트에 맞춰 춤추던 어셔와 그 무대 위로 등장한 제임스 브라운, 전설과 또 다른 전설 간 만남….
“제 자신을 테스트하고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부였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교회 밴드에서 가스펠을 연주하곤 했다. 팝 음악으로 전향하면서는 가상 악기도 빠르게 습득하고 있다. 그는 “어쿠스틱 드럼과 전자적인 샘플 소리가 함께 어우러질 때 더 소리가 나아지는 느낌이 있다”며 “더 좋고 나은 음악을 위해 두 요소를 따로 떼어 생각하기 보단 새로운 것을 계속 습득하며 함께 가져가려고 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드럼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때 드럼 만의 사운드와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팝이든, 가스펠이든, 어떤 장르든 코드 구성 정도만 새로울 뿐이지, 나머지 차이랄 것은 크게 없어요.”
어셔, 아리아나 그란데 드러머 에런 스피어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스피어스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백스트리트 보이즈, 어셔, 아리아나 그란데의 내한으로 총 5차례 방문했다. 특히 2008년 백스트리트 보이즈 때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며 경탄했다.
“우리가 언제 올지 한국 팬들은 미리부터 알고 있었죠. 공항 도착시간에 맞춰 와서는 함성을 쏟아내며 선물을 줬어요. 전 세계 투어를 다니면서 본 팬들 중 차원이 다른 팬이었습니다.”
세계적인 팝 뮤직 드러머로 활동해온 만큼 K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스피어스는 13일 서태지밴드의 키보디스트이자 방탄소년단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닥스 킴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K팝은 아름답고 대단하다”며 “음악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특별한 것 같다. 기회가 되면 K팝 뮤지션과 함께 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 음악은 현재 미국에서도 광풍이죠. 전 세계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한국을 시작으로 올해는 필리핀과 태국, 유럽 등을 오가며 교육자 활동도 이어간다. 드럼으로 받은 사랑을 드럼으로 베풀겠다는 계획이다.
스네어처럼 가죽 소파를 두들기며 그는 한국 학생들이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 역시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드럼에 집중합니다. 그 이상은 하지 않아요. 삶의 밸런스를 지키고 내 의욕을 추동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더 나아지고 발전하려면 우리는 진짜 즐기는 그 순간을 살아야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