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의자를 당겨 손수건으로 건반을 닦던 그는 방랑의 숲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친 듯 했다. 페달에 오른 발을 얹고 묵상하듯 집중.
이내 벼락 같은 손가락이 건반 아래 떨어졌다. 손목의 탄력으로 조절하는 타건,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 다운 루바토(감정에 따라 속도를 자유자재로 해석하는 것) 기술, 20분 간 격렬함 끝에 땀 바다가 된 피아노….
26일 오후 11시(독일 현지시간 오후 4시) 유튜브로 생중계된 피아니스트 조성진 공연의 백미는 후반 20분이었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지만 테크닉적으로 굉장히 까다롭다고 알려진 난곡을 그는 단단한 터치와 세부화된 페달 사용으로 이해하기 쉽게 해석했다.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조차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한 곡. 조성진은 앞서 지난 13일 뉴스토마토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기술적으로 슈베르트 곡중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이 곡을 정의했다. [
뉴스토마토 4월14일자 참조, (인터뷰)조성진 “30분 곡 한 번에 녹음…슈베르트 상상력에 초점”] “어려운 테크닉을 감추는 게 이 곡을 연주하는 가장 어려운 점”이라면서도 곡 해석 땐 “기술적인 면보단 악장 간 쉼 없는 전개, 한 악장처럼 만든 진보적인 마인드와 상상력, 자유로움에 초점을 둔다”고도 설명했다.
이날 방랑자 환상곡에 앞서 조성진은 브람스의 ‘인터메조 6개의 피아노 소품 중 6번(간주곡)’와 베르크의 ‘알반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1번’를 연주했다. 특히 슈베르트의 힘찬 선율에 비해 부드럽고 섬세했던 두 곡의 배치는 후반부를 더 극적으로 강조하며 공연 체험을 '흐름 예술'로서 느껴지게 했다.
조성진. 사진/도이치그라모폰 유튜브 캡처
이날 조성진은 첫 곡을 들려주기 직전 "최근 불안정하고 비극적인 상황이 이 곡을 더 가깝게 느껴지게 했다"며 "그런 느낌을 잘 표현한 곡"이라고 했다. 부드럽고 은은한 선율의 해당 곡은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매만져 주듯 따뜻하고 온화했다.
이날 랜선 공연은 도이치 그라모폰(이하 DG)이 기획한 온라인 공연 시리즈 ‘모먼트 뮤지컬(Moment Musical)’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모먼트 뮤지컬’은 DG가 코로나19로 공연이 잇달아 취소되면서 기획한 행사. 지난달 27일부터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역사 깊은 마이스터홀과 피에르 불레즈홀 등에서 온라인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무관중으로 녹화한 연주 영상을 유튜브 라이브로 무료로 송출한다. 연주 영상은 이후 일정 시간 유지 후 비공개로 전환된다. 지금까지 다니엘 바렌보임, 안드레스 오템잠머, 안나 프로하스카, 아비 아비탈, 알브레히트 마이어 등 세계적인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이날 마이스터홀에서 제작된 조성진 공연은 실시간 시청자가 오후 11시40분 기준 약 4만8000여명에 달했다. 연주 영상은 이날 공개 시점으로부터 72시간동안 관람할 수 있다.
조성진. 사진/도이치그라모폰 유튜브 캡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