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탄탄한 스토리·기획·프로그래밍·화려한 그래픽·귀에 꽂히는 사운드. 게임은 이 모든 것들의 집합체다. 이 중 한 요소라도 없거나 부족하면 게임이 탄생할 수 없다. 기획자와 개발자, 그래픽 디자이너와 사운드 전문가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게임이 세상의 빛을 보는 셈이다. 게임기업들이 한 데 그러모은, 각기 다른 분야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은 과연 어떻게 소통하며 일하고 있을까. 게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모두들 게임 덕후들일까, 아니면 장르 구분 없이 자신만의 전문 기술을 구현하는 데 가치를 두는 사람들일까.
이 모든 궁금증을 풀고자 <뉴스토마토>는 게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소속 게임 프로젝트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해부하는 인터뷰 코너 '게임인사이더'를 마련했다. 그 첫 주자는 박태욱 넷마블네오(넷마블의 개발 자회사) 리니지2레볼루션 총괄 PD(45, 개발본부장)다.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새 역사를 쓴 리니지2레볼루션을 이끌고 있는 그를 최근 서울 구로구 넷마블 사옥에서 만났다.
박태욱 넷마블네오 리니지2레볼루션 총괄 PD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넷마블
게임 제작은 협업…동료 서비스 정신·소통 예의 필수
박 PD는 리니지2레볼루션을 총괄한다. 2주마다 게임 업데이트를 하는데 게임 유저(사용자)의 반응과 지표를 보고 개선방향을 결정한다. 그는 게임 PD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유저에 대한 이해'를 꼽았다. MMORPG는 많은 유저들이 동시에 접속해 함께 즐기는 것이 특징이다. 유저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또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충성도 높은 유저들이 많다. 게임에 대한 의견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박 PD와 게임 제작진은 게시판과 커뮤니티 등을 통해 유저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인다. 한 쪽의 요구에 치우치지 않게 다양한 요구 사항을 이해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게임에 반영하도록 결정하는 것이 게임 PD의 몫이다. 유저들이 호응이나 불만을 나타낸 부분, 즉 '민심'을 잘 파악해야 좋은 게임 PD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 PD는 게임을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으로 서비스 정신과 예의를 꼽았다. 서비스 정신은 고객에 대한 것도 있겠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 게임 제작 작업은 흐름의 연속이다. 자신이 맡은 부분을 완료하면 다음 동료에게 넘기고 또 넘어가며 게임의 골격이 갖춰진다. 이때 자신의 부분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상태로 동료에게 넘겨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동료들과 소통할 때 예의를 지키는 것도 필수적이다. 작업의 과정에 대해 끊임없이 서로 상기시켜주는 것도 필요하다.
리니지2레볼루션에만 200여명의 직원이 관여하고 있다. 장수 게임인만큼 많은 직원들이 투입됐다. 리니지2레볼루션의 주요 팀은 △기획 △프로그램(개발) △아트 △사운드 △개발 동정·결과물 관리 △QA(품질관리) 등으로 구성됐다. 해외 서비스도 하고 있어 개발은 국내·아시아·웨스턴·일본 등으로 구분된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리니지2레볼루션도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다. 약 10명의 인원이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게임 제작이 결정돼 게임에 살을 붙이고 사업전략도 더하며 게임 오픈 전에는 인원이 100명에 달했다. 이후 오랫동안 사랑받는 게임으로 성장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리니지2레볼루션은 국내 최초의 모바일 MMORPG로 혁혁한 성과를 냈다. 지난 2016년 12월 출시된 이 게임은 출시 후 1개월만에 누적 매출 2060억원, 총 플레이 시간 4억2000만 시간, 일일순이용자수(DAU) 215만명이라는 성적을 냈다. 해외에서도 선전했다. 2017년 6월 동남아시아 11개국을 시작으로 같은해 8월 일본, 11월 북미, 유럽, 중동 등 54개국에서 출시됐다. 동남아시아 11개국 중 6개국에서 출시 8일 만에 구글플레이, 애플 앱스토어 최고매출 동시 1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출시 18시간 만에 현지 애플 앱스토어 최고매출 1위에 올랐다. 좋은 성적을 냈지만 박 PD는 여전히 배고프다. 대규모 업데이트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그는 "게임이 횟수로 5년째이다보니 유저들이 새로운 재미를 원하고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방식의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욱 넷마블네오 리니지2레볼루션 총괄 PD가 서울시 구로구 넷마블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현준 기자
중학생때 게임 만들고 대학 시절 공모전…컴퓨터·과학 서적 탐독
박 PD의 게임 사랑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락실을 찾아 당시 인기 게임이었던 스트리트파이터2를 즐겼고 PC에서도 룸(LOOM), 금광을 찾아서, 심시티, 대항해시대, 페르시아 왕자 등 웬만한 인기 게임을 모두 섭렵했다. 그는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비행기가 나타나 미사일 쏘거나 텍스트로 하는 미로찾기 등의 게임이었다. 당시 게임을 만드는데 베이직·코볼·포트란·C 등의 언어가 사용됐다. 중학생때 처음 접한 컴퓨터 잡지에서 게임 기획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할 정도로 과학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컴퓨터 관련 책뿐만 아니라 과학 서적도 탐독했다. 게임 공모전에 게임 시나리오를 출품하기도 했다. 중학교때부터 이어진 게임에 대한 관심으로 그의 진로도 자연히 게임 회사로 이어졌다. 박 PD는 당시 넷마블이 퍼블리싱을 담당했던 게임 개발사에 입사해 MMORPG '다크에덴' 제작에 참여했다. 이 게임은 현재도 서비스되고 있다. 이후 넷마블네오에서 리니지2레볼루션의 기획팀장으로 합류했고 국내 PD를 맡다가 총괄 PD까지 담당하게 됐다.
게임이 인기 콘텐츠로 부상하면서 게임 회사도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어하는 기업 중 한 곳이 됐다. 채용 면접관이기도 한 박 PD는 특히 열정을 보였던 구직자를 떠올렸다.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현직 게임사 직원에게 직접 찾아가 자신이 작성한 게임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평가를 부탁한 구직자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게까지 열정을 보이는 미래의 후배에게는 조언을 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 PD의 설명이다. 박 PD가 기억하는 그 구직자는 현재 넷마블의 직원이 됐다.
박 PD는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두 가지 조언을 했다. 게임을 만드는 것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 첫번째다. 게임을 즐기는 것과 자신이 직접 만드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또 박 PD는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써보라고 하는 것처럼 게임을 많이 접해보되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써보거나 툴을 사용해 직접 만드는 등의 시도를 해보는 것도 추천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