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포기할 건 삼성 승계만이 아니다

입력 : 2020-05-12 오후 3:06:38
주식시장에는 분명 세력이 있다. 상한가를 친 종목은 대체로 기관이 매수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난다. 거기에 개미는 다리를 걸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백신주, 마스크주 등 이슈가 빈발하는 테마주가 늘어나면서 주식시장은 더욱 들쭉날쭉했다. 개미들이 좋아하는 파도가 쳤다. 거의 매일 상한가를 치는 종목이 존재했다. 그 줄을 잡지 않으면 목돈을 벌 기회를 놓치는 꼴이니 개미가 모여 동학개미가 됐다.
 
동학개미로 포장됐지만 실상은 단기 급락한 만큼 급등하길 바라는 단타족이 다수다. 단기 차익에 베팅하지 말고 성장 기업을 사라는 워런버핏식 투자법은 그들에게 아둔하게만 인식될 뿐이다. 그러니 기업도 소액주주를 존중하지 않는다. 정당한 배당을 지급하지 않고 잉여자본이 있으면 자사주 꼼수만 부린다. 단기 폭등한 일부 종목은 경영진이 직접 주식을 팔기도 했다. 어차피 단타족이 부풀린 거품주니 경영책임 따위 지킬 의리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경영진도 눈치 보지 않고 한몫 잡았다. 그 기업의 이미지나 경영관, 주주를 대하는 경영진의 태도 등이 어떻게 비칠지 신경쓰지 않았다. 다음 정기 주주총회까지 남아 있는 개미가 없을 테니까. 제약업체들은 코로나 치료 효과가 있다는 둥 정작 임상도 안할 거면서 변죽 울리는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그게 진짜뉴스인지 단타족에게 중요하지 않다. 팔기 전까지 들통나지 않으면 된다.
 
주식시장이 이렇게 오염된 데는 지배주주일가의 사익편취 행태가 깔려 있다. 주주는 기업이 온전히 성장을 위해 자본을 쓰고 선순환할 것이라고 믿기 어렵게 됐다. 기업 총수일가들이 숱한 편법으로 상속하고 지분을 불렸기 때문이다. 개미는 거기에 편승할 타이밍만 노린다. 재벌그룹이나 코스닥 시총 말단 기업이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코스닥 기업이 페이퍼컴퍼니나 비외감 법인 계열사 등을 이용해 일감몰아주기, 총수일가에 유리한 합병 등을 통해 조작한다. 순수하게 배당으로 주주환원하는 기업이 드물다. 덩치만 작지 뒤로 챙기는 사익 규모는 더 클 것이란 불신이 가득하다. 배당주를 줬다가 자사주를 샀다가 팔고 난리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사재출연 없이 지배주주 일가는 지분이 불어난다. 자본은 엉뚱하게 쓰이며 기회비용을 낭비하고 주식시장은 그 소용돌이에 섞여 도박판이 된다.
 
주식 투자는 그 기업의 주인이 돼서 성장을 함께하는 일이라고 워런버핏이 말했다. 그게 부동산 투기와 달리 개미들이 존중받아야 할 이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식투자도 부동산 갭투자와 성격이 같아졌다.
 
삼성전자가 분기배당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런 주식판을 바꾸려는 노력이 보인다. ‘국민주가 되겠다며 액면분할도 했다. 그러나 삼성물산 합병에 얽힌 국정농단 뇌물 사건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등에 휘말리며 퇴색됐다. 삼성전자는 2018년에 영업이익 59조를 벌고 작년에 위기를 맞았지만 28조를 벌었다. 각각의 법인세비용만 17, 9조나 된다. 비교불가 수준 경제기여에도 정작 사랑받는 기업 순위에선 LG 등에게 밀릴 때가 많다.
 
그런 삼성이 다시 큰 맘을 먹었다.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약속은 재판과 엮여 폄하되기도 하지만 분명 커다란 의미가 있다. 삼성이 경영과 소유의 분리를 약속한 것이다. 미국은 이미 100년 전에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기업들이 출현했다. 오늘날 대부분이 그런 체제다. 일본 역시 2차 세계 대전 후 재벌 해체 과정을 거쳐 거의 모든 민간 대기업들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있다. 양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고려하면 그런 체제는 선진화된 구조임을 입증한다.
 
하지만 삼성이 그렇게 바꾼다면 무수한 낙하산부터 걱정이다. 국내 주인없는 기업들이 부패, 사고가 없는 것도 아니다. CEO 임기 동안 소모적인 라인다툼도 심하다. 인사에 유리한 단기성과에 집착하고 때론 불의한 당정 관료들과 손을 잡는다. 주인의식이 약한 탓에 불필요한 비용 지출도 많다.
 
삼성이 바꿀 것을 약속했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다. 외세에 약해질 삼성이 오염되지 않도록 사회도 건전화돼야 한다. 거대 자본으로 뭉친 중국 기업은 삼성 타도를 외친다. 진정한 동학개미들이 삼성을 지키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삼성 승계와 함께 낙하산도 포기해야 한다.
 
이재영 온라인부장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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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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