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등용 기자] “정부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리면 사정이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아직까지 눈에 띄는 변화는 없네요.”
19일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 중인 박 모씨에게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매출에 영향이 있었는지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이날 방문한 남대문 시장은 전반적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소비 심리가 되살아날 것이란 정부의 기대감과 달리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전 모씨는 “여기가 옛날에는 지역 사람들도 많이 오고 했는데 요새는 외국인 관광객이 주라 긴급재난지원금이 큰 효과를 낼 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일단 사람들의 지갑이 열리기 시작한다면 우리에게도 영향이 있지 않겠나”라며 막연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특히 전통시장 소상공인들의 경우 대부분이 아직 배달 서비스와 같은 언택트 소비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직접 찾아오지 않는 이상 매출이 늘어날 수 없는 구조다. 정부에서 소비 진작을 위해 아무리 현금을 풀어도 이들에겐 그림의 떡인 셈이다.
박영철 남대문시장 대표는 “여기가 반찬이나 쌀 같은 생필품을 사러 오는 시장은 아니다”라면서도 “요즘은 외국인 손님 10명이나 오나 싶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동대문 시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 중인 김 모씨는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을 봐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매출이 나아졌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면서 “아무래도 공짜 돈이 생기면 아예 명품을 사거나 생필품을 사겠지 굳이 시장까지 오겠느냐”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러한 전통시장 분위기와 달리 편의점과 일부 대형마트는 긴급재난지원금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GS25와 CU, 세븐일레븐 등 주요 편의점 3사의 지난 주말 매출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GS25의 경우 샴푸와 바디워시 등 헤어·바디 세정 용품 매출이 전주보다 265.6%나 뛰었고, CU는 전주 대비 얼음이 65.9%, 아이스드링크가 40.1%, 아이스크림이 38%의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세븐일레븐도 일상 생필품과 장보기 관련 상품을 중심으로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 중 유일하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는 하나로마트도 지점마다 다르지만 매출 상태가 호전된 모습이다. 하나로마트 관계자는 “주로 잘 팔린 상품을 보면 우유나 휴지 같은 생필품과 함께 한우 같은 고가 제품도 인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긴급재난지원금 효과가 이처럼 일부 업종에 편중된 모습을 보이자 애초에 사용처 지정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대형마트나 백화점, 유흥업종 등에서는 사용이 제한됐지만 애플이나 이케아 같은 글로벌 기업과 샤넬 등 일부 명품 매장에서는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영세 자영업자에게까지 훈기가 돌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영식 가구산업협회장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사용 목적은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것”이라며 “이 지원금을 이케아 같은 대형 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정부의 행정착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통시장·소상공인 정책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이와 관련해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지난 18일 기자들과 만나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 논란을 묻는 질문에 “긴급재난지원금은 가급적 소상공인에게 지원돼야 한다”면서도 “다만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는 행정안전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행안부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사용처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있다는걸 인지하고 있다”면서 “이런 부분과 관련해 개별 가맹점을 사용 가능 업종에 넣고 빼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긴급재난지원금은 지난 18일 기준 전체 예산 14조2448억원 가운데 62.6%에 해당하는 8조9122억원이 지급됐다. 전체 지급 대상 가구 2171만 가구 중엔 65.7%인 1426만 가구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했다.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의 한 그릇 상점에 재난지원금 사용 시 할인한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사진/뉴시스
정등용 기자 dyzpow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