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권안나 기자] 다음 달 1일이면 일본의 한국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가 있은 지 꼬박 1년이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공격에 허를 찔린 국내업체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으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동시에 업계 전반의 큰 전환기를 맞았다는 평가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일본의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핵심소재 규제 등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절차를 진행 중이다. 거듭 규제 철회를 요구했으나 일본이 미온적으로 나오자 결국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정부가 이러한 강경책을 쓸 수 있었던 데에는 WTO 승소에 대한 자신감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성공적으로 규제 방어에 힘쓰고 있는 국내 반도체 업계의 성장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일본 규제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족한 성장동력 발굴 태스크포스(TF) 장을 맡은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규제 이후 그간 일본에 크게 의존했던 불화수소 등과 같은 반도체 핵심소재들을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공급처 다변화 등이 필요하다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라며 "이번 규제로 인해 한단계 성장한 국내 반도체 업계 입장에서는 좋은 전환기를 맞았다"라고 설명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규제 후에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모두 정상적으로 공장을 가동하지 않았나. 규제 이전보다는 양국 모두 피해를 입은 게 사실이지만, 일본 소재 업체들의 매출이 급감하는 등 한국보다는 일본이 더 피해를 입었다"라며 "과거 일본도 지금 우리처럼 상대국들의 규제 과정을 거치며 반도체 산업 성장을 이룬 전례가 있다. 우리 역시 이번 규제를 토대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라고 평가했다.
현재 국내 업체들은 일본이 발을 묶으려 한 반도체 핵심소재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솔브레인·램테크놀러지가 이미 액화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한 가운데 최근 SK머티리얼즈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초고순도(99.999%) 불화수소(HF) 가스 양산을 시작하고 2023년까지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삼성전자 직원(왼쪽)과 이오테크닉스 직원이 양사가 공동 개발한 반도체 레이저 설비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용 불화아르곤(ArF)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동진쎄미캠은 포토레지스트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하드마스크(SOC)와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개발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이외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독자기술을 확보해 국산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반도체 소재 기업들은 지난 1분기 일제히 견조한 성적표를 내며 일본 규제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솔브레인홀딩스는 지난 1분기 2526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같은 기간 2468억원 대비 2.3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진쎄미캠은 2246억원을 기록해 전년(2164억원)보다 3.79%가 늘었다. SK머티리얼즈도 1분기 2123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1843억원)보다 15.19% 상승했다.
하반기로 갈수록 전망은 더욱 밝다. 솔브레인홀딩스는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대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 연간 매출 1조605억원, 영업이익 1949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8.38%, 11.88% 급성장할 전망이다. 동진쎄미캠도 올해 매출액 9150억원, 영업이익 137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4.54%, 30.8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까닭에 일본 매체를 중심으로 이번 규제가 오히려 일본에 독으로 돌아왔다는 자성론까지 등장했다. 실제로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계 불화수소 1위 업체인 일본 스텔라케미파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각각 12%, 32%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이후 국내 업체들은 발빠르게 소재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에 매진했다"라며 "지난 1년간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면서 앞으로 반도체 생산에 있어 선택지를 넓혀놨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김광연·권안나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