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참된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갖는 것입니다.’
책을 여는 첫 문장은 고 신영복 선생이 생전 남긴 문장 한 줄이다. 삶 궁극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세상 천지이지만, 이 한 줄은 그 함몰된 군중들로부터 살짝 비켜 서라는 가슴 뜨거운 절규로 읽힌다.
이 묵직한 말은 생의 좌표를 바꾼다. 우리는 그저 흘러가는 물고기여서는 안 된다. 죽을 힘으로 강물을 거스르는 산란기 연어 떼처럼 살아야 한다. 삶, 그 궁극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수없이 무너지고 주저앉더라도 ‘방향 있는 삶’은 후회가 없다.
여기 부단히 삶 궁극의 목표를 찾고 있는 14명의 청춘이 있다. 이들은 모두 연어떼 같은 담대한 용기와 실천력으로 고 신영복 선생의 문장 한 줄을 체화한 삶을 살고 있다.
애초 목표와 방향 설정부터가 다른 이들의 삶의 양태를 보다 보면 속도 경쟁에 함몰된 이 시대 보통의 청춘들과는 뿌리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남들이 하니까 혹은 남들 말 때문에 쉽게 발걸음을 떼지 않고, 스스로의 질문과 동기로부터 필요하다는 납득이 서면 그때 움직이고 행동한다. 이들 모두는 ‘공교육의 혁신 모델을 선도한다’고 평가 받는 이우학교 졸업생들. 책은 자신 만의 소우주를 만들고 있는 이들의 각기 다른 삶 무늬를 펼쳐 보여준다.
이를 테면, 6기 졸업생 김지원씨는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이후 인류학과 석사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 부모피해자들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를 진행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는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일했고, 현재는 오늘날 환경위기와 도덕의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자 인류학과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대입에 도움 되는 공부’와 ‘대입에 도움 되지 않는 공부’가 구분되지 않았다는 그는 “경쟁 과정에서도 서로 협동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큰 이익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이우학교 경험은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오늘날까지 일깨워주고 있다”고 말한다.
2기 졸업생 도재현씨는 삼성물산 건설 부문에서 토목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이우학교 재학 당시 중국 동북공정, 친일파 식민사관에 열을 올리던 그의 본래 꿈은 역사 교사. 그러다 학교에서 진행한 NGO 활동으로 건축 봉사를 하면서 삶의 뚜렷한 방향이 생겼다. 건설공학 학사 졸업, UN 파병으로 아이티 지진 피해 복구 임무 수행, 삼성 입사 후 호주와 베트남 건축봉사…. 그는 이우학교를 통해 “선택과 집중, 내가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2기 졸업생(32세)부터 8기(26세)까지 14명의 필자는 이렇게 졸업 후 '각자의 길'을 보따리 풀듯 풀어놓는다. 필진 중 일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모두 이우에서 다녔고, 일부는 고등학교만 이우에서 다녔다. 대체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안팎이 된 청년들이다.
책은 왜 이우학교가 공교육의 혁신 모델로 평가 받는지 이들의 사례를 통해 대답을 갈음한다. 핵심은 학교가 이들에게 단순한 주입식 공부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가르쳤다는 것.
보통의 학교와 달리 학생들이 배운 것은 ‘잘 넘어지는 법’이다. 실패 후에는 또 다시 일어서는 법을 학교로부터 배운다. 졸업 후 험난한 세상을 버텨낼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학입시에 매몰되기 보다 교사들은 지식이 아이들의 내면에 가 닿는데 초점을 맞춘다.
아시아 국가 탐방, 연극 프로그램, 농촌 봉사활동 등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장려하고 이사회,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활발하게 토론한다는 것도 이 학교 만의 특장점이다.
다만 책은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가 이우학교였기 때문에 모두 가능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겸허한 자세를 취한다. 김철원 이우중고등학교 교장은 “이 책이 이우학교 졸업생의 성공기로 읽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어쩌면 삶의 의미는 표준화된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유하고 개별적인 성장에 있는 것이다. 아이들(필자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 이우학교를 통과해갔을 뿐”이라고 서문을 썼다.
책 속 밑줄 긋기: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삶에서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믿는 것. 그래서 정해진 순서대로 성공의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순간에 일어나는 우리의 선하고 아름다운 선택을 가슴 깊이 믿는 것.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희망을 가르치고 싶었고, 오히려 그렇게 담대하게 선택하고 움직이고 시도하는 아이들을 보며 배웠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