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라임 무역펀드' 전액배상 거부 조짐

하나은행, 수용결정 연장 요청…종합검사 앞둔 당국 압박 부담

입력 : 2020-07-21 오후 5:13:47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은행권이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 원금을 투자자에게 전액 돌려주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받아들일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키코(KIKO) 분쟁조정 사례처럼 전액 배상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펀드 판매사가 투자금 전액을 배상한 전례가 없는데다 배임 소지가 있어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원이 내달부터 종합검사를 재개할 예정이라 당국의 보이지 않는 압박도 부담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라임 무역펀드 판매사들은 오는 27일까지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권고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판매사들 중 처음으로 하나은행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분조위 100% 배상 권고 안건을 상정해 논의했지만, 수용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분조위의 결정을 수락할 경우 조정이 성립되고,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며 "분조위 결과 수락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결정기한을 다음 이사회 일정까지 연기할 수 있도록 신청할 예정이다. 다만 향후 이사회 일정은 아직 미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달 30일 라임 펀드 분쟁조정을 통해 판매사들에게 100% 배상 결정을 내렸다. 판매 과정에서 펀드 부실을 감춰 민법상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가 대상으로, 해당 펀드 판매액은 총 1611억원이다. 판매사별로 보면 우리은행이 650억원, 신한금융투자가 425억원, 하나은행이 364억원, 미래에셋대우가 91억원, 신영증권이 81억원을 판매했다.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린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금융정의연대 회원들과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주는 배상안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은행 이사회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다른 판매 은행들도 이사회에서 권고안 수용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결정기한 연장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관련 분쟁조정 당시에도 은행들이 권고안 수용 여부를 수차례 연장한 바 있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전액 배상 권고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이 판매사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먼저 판매사가 투자자들에게 배상한 이후 라임 측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지만, 투자금 회수는 요원하다.
 
이사회에서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고 권고안을 수용하면 향후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실제 금감원의 키코 배상 권고에 대해서도 금융사들은 배임 소지가 높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100% 배상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라 법률적 검토뿐 아니라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라며 "라임 펀드만이 아니라 향후 이어질 사모펀드 분쟁에서 배상의 기준이 될 수 있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부담이다. 당장 금감원은 다음달부터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시행한다. 현재 종합검사를 앞두고 검사와 관련한 제반 사안들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서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의 불완전 판매와 내부통제 여부 등은 주요 검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도 종합검사 수검 기관으로 거론되고 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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