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을 위한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 재산 압류명령이 송달되더라도 자산을 현금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일본제철이 우리나라 법원 결정에 대해 즉시 항고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별도로 진행되고 있는 주식 매각명령신청에 대해 일본 측이 협조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자산 매각이 현실화될 경우 관세 인상이나 송금 규제를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일본 측은 즉시 항고와 재항고 등을 통해 '지연 전략'을 펼 가능성이 높다. 매 심리 과정에서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결정 확정까지는 해를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압류명령만 해도 법원 결정으로부터 7개월 이상 걸려 확정됐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가 2018년 10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압류명령과는 별개로 일본제철 자산의 현금화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 주식매각명령 절차도 일본 측의 무대응으로 지연되고 있다. 피해자 측은 2019년 5월1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압류된 PNR(포스코와 일본제철 합작 회사)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 신청을 했고 현재 주식감정절차와 일본제철에 대한 채무자심문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법원이 심문서 송달을 진행 중이지만 이 역시 일본 외무성의 방해로 1년이 넘도록 일본제철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주식감정절차의 경우 PNR 협조에 따라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채무자 심문서는 법원에 공시송달 등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일각에서는 3~4개월 후 배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 선고 이후 지속적으로 일본제철에 판결이행 방식을 협의하자는 요청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면서 "언제든지 요청한다면 그에 응해 협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제철에 대한 자산 매각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데도 일본 정부가 즉각 강경대응을 예고하면서 한일관계 경색에 대한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1일 "(일본제철 자산이 강제 매각됐을 경우) 온갖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고 방향성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과 송금 규제 등의 경제 보복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진출 중인 우리 기업의 자산을 일본제철 자산과 비슷한 수준으로 압류하거나 주한일본대사 소환, 비자 발급 제한 등도 주요 대응책으로 거론된다.
일본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일본이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무역분쟁을 일으킨 만큼 이번을 빌미로 제 2의 무역보복에 나설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자산 현금화가 되면'이라고 말한 만큼 그 시기와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아베 정권이 고정지지층까지 무너지면서 코너에 몰렸는데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한다면 표면적인 근거는 강제징용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보수층 결집이라는 정치적인 의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인성 일제피해자총연합회 공동대표 등이 포스코의 강제징용 피해자 구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소송 제1차 소송단 대표 김인성외 일제피해자일동
일부 피해자들은 PNR 지분 70%와 일본제철 지분 1.65% 소유하고 있는 포스코가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김인성 일제피해자총연합회 공동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일본제철에 대한 강제집행이 한일 간 현안이 되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제철의 주주인 포스코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포스코가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자발적 구제를 권고한대로 했다면, 한국 대법원에서 2018년 확정 판결이 났을 때 자발적인 판결 이행을 했다면 강제징용을 중심으로 한 한일 갈등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최봉태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포스코는 일본제철의 주주로서, 대법원 판결의 이해관계자로서 판결을 이행하고 경영진이 어렵다면 주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