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긴 장마가 끝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뤄온 '늦은 여름휴가'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휴양지나 놀이시설에 인파가 몰리면 그만큼 안전사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안전사고가 지방자치단체나 운영업체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여름 휴가철이 지나면 손해배상 소송 상담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휴가지에서 발생한 각종 안전사고 때문이다.
2017년 6월21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가 여름철 수난 사고 예방을 위해 충북 괴산 쌍곡계곡 ‘용소’에 설치한 그물망을 설치해놨다. 사진/뉴시스
전국 해변과 계곡 등은 지자체가 관리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대부분이다. 대법원은 모든 사고를 배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고 위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용 상황, 사고 이력 등을 고려해 사회통념상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 지자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재판장 김동진)는 A양과 가족이 서울시와 강북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두 지자체가 총 15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양은 북한산의 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열려 있던 수문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로 뇌 손상을 입었다. 지자체는 '비 올 때 이용금지'라는 팻말을 세워뒀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인근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돼 물놀이 장소로 인식·이용돼 왔고, 공문서에도 '물놀이시설'이라고 지칭됐다"면서 "수문이 개방됐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고, 물놀이를 막거나 수문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안내하는 직원도 없었다"며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다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났거나 안전사고 가능성에 대한 안내가 있었음에도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민사17부(재판장 이창형)은 휴양객이 2012년 해파리에 쏘여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안내방송을 한 점, 이후 진료가 합리적인 방법을 벗어났다고 할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14부(재판장 정종관)은 2014년 강원도 한 계곡에서 다이빙을 하다 익사한 어린이의 부모가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정해진 길이 아닌 곳으로 이동할 것까지 예상해 지자체가 안전 조치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서울 광나루 119수난구조대원들이 지난 7월21일 서울 강동구 광나루 일대 한강에서 한강 잠실수중보 상류 수역에서 발생하는 수난사고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 구조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영장이나 워터파크, 해외 여행지에서 일어난 사고의 경우 운영업체나 여행사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은 지난해 11월 수영장에서 익수 사고를 당한 어린이와 그 부모 등이 수영장을 관리하는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6살이었던 B군은 성인용 풀로 넘어가 수영하다가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됐고 사지마비와 두 눈이 실명되는 중상해를 입었다. 대법원은 "하나의 수영장에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같이 설치하고 코스로프로만 구분해놓았으며 벽면에 수심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수영장 구조에 하자가 있고, 이 하자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여행사를 매개로 한 사고는 관광객에게 안전배려의무를 다했는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는지, 사고 직후의 신속한 대처가 있었는지 손해배상책임 유무가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재판장 박성인)는 C씨 유족 등이 여행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족들에게 88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C씨는 2018년 여행사 안내로 하와이 여행을 하던 중 하나우마 베이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물에 빠져 숨졌다.
재판부는 "여행사 직원은 전날 일정을 안내하면서 사고 지역에 관한 위험성이나 스노클링 안전수칙 등 고지하지 않았고 여행객들과 동행하지도 않았다"면서 "C씨 등이 하와이 주정부의 안전교육 동영상으로 교육받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여행사가 안전배려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