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집중호우에 서울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한강과 각종 물길을 끼고 발달한 서울은 자연스레 비옥한 저지대에 사람이 몰렸고, 이는 도시화 과정이 더해져 광화문·강남역·망원동·방배동·풍납동 등이 잦은 침수 피해를 입은 슬픈 역사를 낳았다.
을축년 대홍수라고도 불리는 1925년 집중호우는 647명의 사망자를 낳고 100㎢에 달하는 논밭이 유실됐지만 덕분에 한강 제방공사를 시작했고, 땅 속에 묻혀있던 풍납토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1984년 서울 대홍수는 서울에서만 10만여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키는 등 당사자에겐 절망 그 자체였지만, 이를 계기로 북한에서 구호물자를 보내왔고 이듬해 첫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1990년 집중호우로 한강 수위가 을축년 이후 가장 높아지며 한강 제방이 무너져 이후 자유로가 만들어졌다. 2011년 집중호우는 역대 9월 내린 비 중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서울 주요 번화가들이 대부분 피해를 입었으며, 우면산 산사태, 강남역 워터파크, 관악수영장 등으로 기억된다.
특히, 2010~2011년 집중호우를 계기로 더 거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급변하는 이상기후로 이전과 다른 국지성 집중호우가 늘고, 하수관로는 좁고 낡았으며 도시 절반 가량이 불투수층으로 빗물을 소화하지 못한다. 서울시는 취약지역 34곳을 선정해 2021년까지 1조5000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신월 빗물저류시설이다. 목동~신월동 약 5㎞ 구간에 지하 50m 깊이에 만들어진 시설은 폭우가 내리면 수영장 160개 분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시간당 100㎜의 폭우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이 시설은 오랜 공사를 거쳐 이번 폭우에 첫 가동됐다. 덕분에 비만 오면 물난리를 겪던 신월동 일대는 이번 집중호우를 견뎌낼 수 있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각 지역별 방재시설 상황과 개발사업 현황에 공사를 연계하다보니 34곳 중 30곳은 이미 마무리 단계이지만, 강남역·망원·사당·광화문 등은 내년 이후에나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과잉개발에 저지대까지 겹친 강남역 일대는 이번 집중호우에도 하수가 역류하며 적지않은 피해를 낳았다.
부산도 많은 빗물저류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대부분 신시가지 위주로 만들어져 원도심과 서부산은 혜택을 못 봤으며, 이는 이번 집중호우의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다. 빗물저류시설 외에도 낡은 하수관거와 하수관로의 적은 용량은 평상 시 대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
반면, 수원은 수년 전부터 ‘레인시티’를 내세우며 도시 개발과정에 투수면을 최대한 확보해 녹지를 늘려 왔다. 많은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레 스며들거나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다. 현재 수차례의 집중호우에도 수원은 물난리 없는 도시로 꼽히며 세종·울산·대전 등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번 집중호우에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이어졌지만, 막상 비가 내리는 동안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펌프로 물을 빼고 바가지로 물을 퍼는 수준으론 당장 차오르는 속도를 이겨낼 수 없었다. 함박눈이 계속 내리는 데도 빗자루로 눈을 쓸 수밖에 없는 심정이다. 그때 가서 갑자기 배수관을 넓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란 속담도 있지만, 때때로 우리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조차 고치지 않는다. 이상기후야 더 심해질테고 내년 혹은 내후년엔 이보다 더 많은 양의 비가 오랜 기간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 아니 내년엔 설사 폭우 대신 폭염이 찾아오더라도 우리는 지금 폭우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게 비가 그치고 난 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박용준 공동체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