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대법원이 산업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자녀를 특별 채용하도록 한 현대·기아자동차의 단체협약 조항이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하지 않으므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7일 업무상 재해로 숨진 이모씨의 유가족이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7일 현대·기아차의 산재 유족 특채 단체협약 조항은 민법에 위배되지 않아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사진/뉴시스
재판부는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정으로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채용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회사의 주장에 대해서 "노사는 1990년대부터 자율적으로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단체협상에 포함해 왔다. 회사는 장기간 지속해서 유족을 채용해 왔고, 결격사유가 없는 근로자로 채용 대상을 한정하고 있기도 하다"면서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들의 채용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대·기아차가 다른 구직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피고들의 사업 규모가 매우 크고 근로자 숫자도 많은 반면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따라 채용된 유족의 숫자는 매우 적다"면서 "특별채용이 피고들에 대한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이기택·민효숙 대법관은 단협의 산재노동자 자녀 특별채용 조항이 구직희망자의 희생을 기반한 것으로 위법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기업의 필요성이나 업무능력과 무관한 채용기준을 설정해 일자리를 대물림함으로써 구직희망자들을 차별하는 합의로, 공정한 채용에 관한 정의 관념과 법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 소송은 이씨가 현대·기아차에 근무하다가 2008년 8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뒤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로 판정을 받자 유족들이 이씨 자녀를 채용하라고 사측에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노동조합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하면 6개월 내 직계가족 한 명을 채용하도록 한다'는 현대·기아차 단협 조항에 근거해서다.
쟁점은 단협의 특별채용 조항이 사용자의 고용계약 자유를 제한하고 일자리 대물림을 초래하는 등 사회 정의 관념에 반해 민법 103조가 명시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였다.
1·2심 재판부는 A씨의 유족에게 위자료 등 2300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지만, 해당 단협 조항은 무효라고 봤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산재 유족 특별 채용 조항이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향후 유사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