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경기도의 대표적 혁신클러스터인 판교테크노밸리가 정보기술(IT) 업계의 불합리한 고용구조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고용은 감소한 반면 매출은 늘어나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였는데, 이는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을 이어가는 IT업계의 고질적인 폐단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성남시 분당구에 2005년부터 조성된 첨단산업 밀집지구다. 이곳에 입주한 업체 중 90%는 IT와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최첨단 업종에 종사한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으로 제조업을 영위한 기업들은 수익성이 악화됐지만, 이곳 IT 기업들은 언택트 열풍의 수혜를 봤다. 카카오만 해도 3월 이후 주가가 3배 올랐다.
2일 <뉴스토마토>가 경기도청과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자료를 통해 최근 4년 동안의 판교테크노밸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상시 근로자 수는 14% 감소했지만 매출은 무려 38% 증가했다.
실제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이곳 입주 기업은 3.6% 줄었고(1306개→1259개), 상시 근로자는 13.7% 감소(7만4738명→6만4497명)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77조5000억원에서 107조2000억원으로 38.3% 증가했다. 상시 근로자 중 2030세대의 비율은 72.2%에서 64.0%로 감소했다. 판교의 개별 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근로자는 1만명 가까이 감소한 것이다.
이른바 프로젝트 중심의 사업 구조가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IT업체 직원은 "우리는 정규직으로 고용되지만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전환 배치'된다. 다른 팀에 가려면 처음 입사할 때처럼 면접을 봐야 한다"며 "업무 종료 후엔 대기발령에 따른 고용불안의 연속"이라고 하소연했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 소장도 "판교 이전에 강남에 테헤란밸리가 조성됐을 때도 벤처붐이 한창 일어났고 그 당시 살아남았던 기업은 판교테크노밸리에 와서도 성장하고 있다"며 "다만 그 때부터 테헤란밸리에서 근무했거나 IT업에 종사한 인력 중 지금 현직에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류 소장은 "신기술을 통한 일자리 감소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의 종말은 아직 현실이 된 게 아니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중 인공지능과 로봇이 도입되더라도 생존할 정도로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인력은 1% 남짓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판교 상황에 대해 "숫자상으로는 근로자 수가 감소한 것으로 보이는 게 맞다"면서도 "통계를 집계하는 시점과 기업들의 보고 양식이 달라져 차이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과거 성남시장 재직 당시 판교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기본소득으로 IT업계 고용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관심을 모았다. 그는 당시 "기본소득은 취약계층을 구제하는 복지 개념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질서와 성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 3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인근에서 자율주행모터쇼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