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전 세계에서 배달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일본 등 해외에서 택시를 이용한 음식 배달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다. 부족한 배달 라이더 공급을 채우면서 택시 기사들의 추가 수입도 보장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국내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는 동안 한시적으로라도 택시 음식 배달을 허용해줬으면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광주 북구에서 한 배달 라이더가 주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택시의 음식배달업을 허용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택시회사들의 영업이 어려워지자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생계를 걱정하던 일본 택시회사들은 우후죽순 배달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전국 택시 회사의 약 20%가 배달대행업을 운영했다.
일반 배달비보다 비싼 택시요금으로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고급 식당을 중심으로 택시 음식배달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곳이 생겼다. 전문 배달인력이 부족한 지방에서도 택시의 음식배달업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예상보다 인기가 높은 택시 음식배달에 일본 정부는 한시적이었던 영업 허용 기한을 없애고, 해당 서비스를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코로나19에 승객을 잃은 택시업계가 지난 3월부터 생필품이나 식료품 배송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고객이 미리 주문·결제한 물건을 택시가 받아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형식이다. 택시를 이용한 생필품 배송 서비스는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취약한 노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베를린 등 일부 지역에서는 택시 요금보다 저렴한 비용을 책정하는 조건으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뮌헨·함부르크 등 대도시에서는 택시기사들이 단순 물건 배송뿐만 아니라, 구매대행 서비스도 해준다. 고객이 택시회사에 원하는 쇼핑 목록을 전달하면 택시 기사가 마트에 물건을 구입해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 형식이다.
국내에도 최근 택시를 이용한 배달대행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8월 말부터 재확산된 코로나19로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배달 라이더를 구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배달대행사들은 한시적으로라도 빈 택시를 이용한 음식 배달을 허용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뜻을 내비쳤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에 택시를 이용한 물건 배송 서비스를 신청한 곳이 한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배달시장의 수요·공급을 맞출 수도 있고 택시 기사분들도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좋아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배달대행사나 라이더 수가 적은 비(非)수도권 지역에서 택시를 이용한 음식 배달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경남 밀양에서 분식업을 하는 송 모 씨는 "일손이 부족해 퀵으로 배달을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지역에서는 가격 담합이 있어 이용이 다소 부담스럽다"며 "택시를 배달에 이용할 수 있다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택시를 이용한 소형화물 운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딜리버리T는 지금이 물류와 모빌리티의 장벽을 융합할 기회라고 주장한다. 남승미 딜리버리T 대표는 "코로나19로 손님 없이 줄을 서 있는 택시가 많은데,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이 분들이 알음알음 모여 현재 1800명 정도가 저희 플랫폼에 가입했다"며 "퀵서비스가 발달하기 전에는 택시가 백화점 등에서 물건을 배달했고, 식당이나 도매상에서 택시를 불러 물건을 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는 이어 "법에 택시의 물류 배송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없고, 코로나19 물류 대란에 택시 기사들이 좋은 대체 인력이 될 수 있다"라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한시적으로라도 택시의 물류 배송을 허용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딜리버리T는 현재 화물 업계와 퀵서비스 업계의 반대로 1년 5개월째 규제 샌드박스에 계류돼 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