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올 가을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자

입력 : 2020-09-15 오전 6:00:00
신문을 읽어도 방송을 보아도, 그 밖의 다른 미디어를 접해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제2차 재난지원금, 정치와 정치인, 부정의와 불공정, 부동산 관련 기사 등, 온통 힘겨운 언어들로 넘쳐난다. 그렇게 지금 우리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절박함이 곳곳에 배여 있다. 
 
사상 최장에 걸쳐서 우리를 지배했던 장마로, 연이어 다가온 태풍으로, 한반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수마가 할퀴고 간 깊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더하여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보고 싶은 사람들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만남도 모두 취소되거나 비대면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못내 아쉬운 것은 올여름에는 기후 탓으로 요란하게 울어대던 수매미의 사랑노래를 별로 듣지 못했다는 것. 햇살 아래 나부끼던 잠자리의 아름다운 비행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 이제 그런 풍경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는 나만의 기우일까. 기상 이변으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환경 단체들은 올해의 장마를 ‘기후변화’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가 이제 인간의 삶, 그 영역에 정착하며 그 기능을 발휘하는 시절을 호흡하고 있다. 동아시아에 퍼붓던 물 폭탄과 달리 지구 반대편에서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극단의 시대. 
 
그래도 시간은 계절을 재촉하여 가을이다. “그대 /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 강물이 저희끼리만 /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시(안도현 「9월」 일부)처럼, 이번 가을은 그 어느 해의 가을보다도 마음이 따뜻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자. 강물이 바다로 합류하는 방식은 강물끼리만 속삭이며 그저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강물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눠 가지며 흘러가는 방식이다. 그런 삶의 바탕 위에 들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풍경처럼 우리의 사랑에도 꽃이 피어나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불어 살아가는 생각이 필요하다. 
 
또한, “잔잔한 수다를 떨고 있는 / 초가을 빗줄기처럼 / 그녀의 귓속말이 내 몸으로 스며들 때마다 //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를 빗소리로 얼버무려주는 / 가을 우산” (오석륜 「가을 우산」 일부)을 써보자. 힘들 때일수록 사랑의 힘은 크다. 난세를 극복하는 비결은 사랑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는 것이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년 ~ BC 322년)의 문장과, 러시아가 낳은 대문호 톨스토이(Tolstoy, 1828-1910)의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는 사랑과 관련한 명언이 자꾸 생각난다. 또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널리 알려진 테레사(Teresa, 1910-1997) 수녀의 “나는 내가 아픔을 느낄 만큼 사랑하면 아픔은 사라지고 더 큰 사랑만이 생겨난다는 역설을 발견했다.”는 주옥같은 말도 가을 코스모스처럼 우아한 자태와 향기를 머금은 채 가슴으로 읽힌다. 자꾸 곱씹어 읽어보고 외워보자.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좋은 방법이 되리라 믿는다. 
 
그런 생각으로 이 가을을 맞이하는 내게 우연히 어느 신문에서 본 인천 가천대길병원 오영준 간호사와 관련한 기사는 가슴 뭉클하다. 지난 2월 코로나 환자가 급증했을 때, 음압격리병상행을 자원하며 “같이 사는 가족이 없어 감염시킬 위험이 적은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인터뷰와 함께. 그러한 병상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 자신의 페이스북에 ‘간호사 이야기’로 올리고 있다는 그의 얘기는 훈풍처럼 따스하다. 어디 이 분뿐이겠는가. 대한민국의 의사와 간호사가 코로나와 사투하고 있는 덕분에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희생과 노력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사랑의 실천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여전히 들판에는 잔혹했던 태풍을 이겨낸 벼들이 익어가고 있다. ‘입립신고(粒粒辛苦)’라고 하지 않는가. 벼 한 톨 한 톨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산물이다. 삶이란 것도 그렇다. 난세를 이겨내면 수확의 기쁨이 있는 법이다. 이번 가을은 이웃과 자신을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이하자.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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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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