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문식 기자] 택배 노동자들이 배송 전 분류작업을 거부하는 파업에 돌입키로 하면서 분류작업 현장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품 분류작업은 택배기사들의 업무에 속하지 않지만 그동안 현장에서는 기사들이 배송을 시작하기 전 택배를 주소지별로 나누는 분류작업까지 도맡아왔다. 사실상 근무시간 절반은 공짜 노동을 제공한 셈이다.
17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4000여명의 택배 노동자들은 오는 21일부터 택배 분류작업 거부에 돌입할 방침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7일 서울 정동에 있는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전국 약 4000명의 택배기사들이 오는 21일 택배 분류작업 거부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택배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친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국택배노조가 오는 21일부터 택배 분류작업을 전면 거부하기로 선언한 17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관계자가 택배를 차에 싣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추석 성수기에는 택배 물량이 지난해보다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와 택배사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실제 추석 배송 대란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택배 노동자들이 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바로 배송 전 분류작업 때문이다. 이 분류작업은 택배사에서 각자 맡은 지역으로 갈 물류를 차량 등으로 옮기는 살인적인 강도의 업무다. 택배 노동자들은 보통 아침 7시부터 오후 1~2시까지 6~7시간씩 분류작업에 나선다. 이후 배달시간 등을 합하면 하루 13~16시간을 일한다. 택배사 측은 배달 수수료에 분류 작업 비용까지 포함됐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이 드는 분류 도우미 고용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17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택배 노동자 분류작업 전면 거부 돌입 및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실제 택배기사들이 다뤄야 하는 품목도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쌀포대나 묶음 생수 등까지 분류하는 강도 높은 업무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총알 배송이나 로켓 배송처럼 빠른 배송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택배 노동자들은 더 빨리 제품을 배송해야 하는 고충도 더해졌다. 평소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일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 현실에 처해 있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배달 물량과 노동시간이 더 늘어나 제대로 된 휴식시간을 갖지 못하는 극한의 노동에 몰려왔다는 게 기사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택배 노동자는 개인사업자로,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김세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은 분류 등 작업 과정에서 공짜 노동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택배 노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면서 “장시간 노동의 절반 이상이 바로 분류작업”이라고 했다. 김 국장은 “분류작업이 늦어지니까 배송을 오후 2~3시부터 시작하게 된다”면서 “밤늦게까지 배송을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분류작업에 대한 개선 문제가 결국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문식 기자 journalma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