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조원규 대표는 스켈터랩스를 '인공지능(AI) 회사'가 아닌 '기술 회사'라고 소개한다. 히트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혁신 기술을 만들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하는 회사라는 것이다.
"구글에서 오픈한 기술을 가져와서 상품을 만드는 것과는 차이가 있죠. 이 기술을 응용하거나 개선하는 데 있어 저희가 바닥부터 직접 쌓아 올린 것이니까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스켈터랩스는 그렇게 만들어진 차별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무슨 회사니?' 하고 물어보면 '기술 회사'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AI를 하지 않고서는 좋은 기술 회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AI 기술 회사를 만들게 됐다고 보면 됩니다."
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 사진/스켈터랩스
1988년부터 카이스트에서 AI 분야로 석사 과정을, 1990년부터는 박사과정을 밟은 조 대표는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 부족으로 AI에 대한 관심이 식었던 2000년대 초반을 뚜렷이 기억한다. 이후 몇 차례의 창업 경험 후, 2007년부터 구글코리아 초대 사장을 지내면서 약 7년간 AI에 대한 사업적 접근과 엔지니어링을 배웠다. 이후 AI 시장이 열리는 것을 보며 2015년 다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조 대표는 스켈터랩스가 개발하는 기술 수준이 충분히 올라왔을 때 상품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상품은 기술에 비해서 만드는 시간과 노력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스켈터랩스는 기술 그 자체가 핵심인 회사이기 때문에 이것이 성숙하고 시장이 열릴 때를 맞춰 사업개발·영업·마케팅·유통채널 확보 등 사업화를 준비한다.
지난 4년간 스켈터랩스가 준비한 AI 기술이 지난해 말부터 'AIQ'라는 브랜드를 달고 하나씩 사업화되기 시작했다. 스켈터랩스는 최근 '대화기술 사업부'와 '초개인화 사업부' 두 사업부를 만들고 AI 기술을 패키지화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스켈터랩스의 AI 챗봇 솔루션 'AIQ.TALK 챗봇'. 사진/스켈터랩스
대화기술 사업부는 음성 인식, 음성 합성, 문서 독해, 질의응답 등 '자연어 이해' 기술을 중심으로 챗봇 솔루션과 콜센터 솔루션 등을 만든다. 'AIQ.TALK 챗봇'이 대화기술 사업부가 판매하고 있는 대표 상품이다. 일반적인 고객 서비스 단의 챗봇뿐만 아니라 병원에서의 예약, 보험에서의 약관 관련 질문 등 다양한 분야에 스켈터랩스의 기술이 적용된다. 스켈터랩스의 기술은 LG CNS가 공개한 한국어 기계 독해 데이터셋인 'KorQuAD' 성능평가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수하다.
"원천 기술이 있으니 진출 가능한 시장이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챗봇은 고객 지원을 하는 곳에서는 모두 사용할 수 있죠. 의료 분야 파트너, 제조업 분야 파트너, 보험 분야 파트너 등 다양한 파트너들과 같이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스켈터랩스의 초개인화 솔루션 'AIQ.AWARE' 대시보드. 사진/스켈터랩스
초개인화 사업부는 사용자의 선호도와 생활 패턴을 읽어서 모델링 해주는 초개인화 솔루션 'AIQ.AWARE'을 만든다. 개인화 정보를 바탕으로 이 사람이 어떤 상품을 추천받았을 때 '스팸'이 아닌 '유용한 정보'로 인식하는지, 언제 상품을 추천받아야 구매 확률이 높은지를 분석한다. 온라인 광고와 마케팅이 많은 e커머스나 여행업계와 기술검증(PoC) 또는 계약 단계에 있다. 최근 여성 의류 전문 기업 '아이디룩'과 초개인화 솔루션 적용 계약을 체결했다.
"저희 기술을 적용했을 때 광고나 알림을 열어보는 비율이 20% 늘었다거나, 앱 설치율이 얼마나 높아졌다 등을 측정합니다. 이 분야는 아마존 등 대기업이 자체 서비스를 위해 개발하는 경우는 많지만, 저희처럼 이를 상품화해서 B2B 판매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스켈터랩스는 지금까지 만든 솔루션을 '서비스형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비디오 큐앤에이 솔루션도 만들고 있다. 영상의 음성을 인식해 그 내용을 포털에서 찾듯 검색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면 유튜브의 화장품 리뷰 영상 어떤 부분에서 보습 관련 내용이 나오는지를 찾는 것이다.
조 대표는 스켈터랩스가 대기업과는 다른 AI 시장을 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AI 기술 시장이 설치형 중심인 대기업과 구독형 중심인 중소기업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스켈터랩스가 보는 시장은 구독형 중심의 솔루션 패키징 상품 판매 시장이다.
"대기업은 별도로 의사를 결정하고 자신들에게 딱 맞춘 상품을 만들어 주기를 원합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상품을 그대로 사서 사용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MS 오피스처럼 패키지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죠. 다양한 중소기업도 바로 적용해 쓸 수 있게 저희가 패키징을 해서 일괄적으로 판매하는 거죠."
조 대표는 대기업은 계열사를 중심으로 맞춤형 솔루션을 만들기 때문에 자신들은 중소기업 시장을 목표로 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설립 초기부터 중소기업 위주로 경제가 만들어진 일본과 동남아 시장 진출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이미 해외 기업들과 관련 이야기를 심도깊게 논의 중이다.
"사실 올해가 해외 진출의 원년이 돼야 했는데 코로나19로 지연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내년이 아닐까 기대합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매출이 약 5배 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다른 시장을 보고 있는 만큼 조 대표는 "기술에서도 상품에서도 대기업과 경쟁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KorQuAD 기반 성능 평가에서도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 연구소들과 순위 다툼을 하고 있지만, 이는 서로 기술 발달을 돕고 또 홍보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쟁으로 대기업 기술과 저희 기술의 우수성이 동시에 알려지면 작았던 시장이 커집니다. 최근 1, 2년간 AI 기술이 성장하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대기업도 저희도 충분히 큰 시장을 같이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스켈터랩스 CI. 사진/스켈터랩스
조 대표는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좋은 회사란 좋은 사람이 모이고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다. 스켈터랩스가 훌륭한 AI 인재를 발판 삼아 기술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것도 조 대표의 이런 철학이 바탕에 깔린 덕분이다.
"저희 회사를 돈 때문에 오는 분은 없습니다. 그럴 채용 능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를 오는 분들이 있는 것은 '굉장히 존경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좋은 사람이 모입니다. 좋은 동료들이 있으면 프로젝트가 보람되고 회사가 즐겁습니다. 저는 경영자로서 이런 조건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조 대표는 '좋은 회사'를 설명하며 비틀즈의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라는 노래를 소개했다. 헬터 스켈터는 롤러코스터가 건물을 타고 나선형으로 내려오는 놀이기구를 뜻한다. '스켈터랩스(Skelter Labs)'라는 회사 이름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비틀즈는 헬터 스켈터를 탈 때의 그 짜릿하고 흥분되고 위험하기도 하고, 또 쾌감을 주는 감정을 노래했습니다. 저는 스타트업이 이 헬터 스켈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위험하지만 짜릿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