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정부가 수도권에 13만2000호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8·4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지 두 달째지만, 부지가 된 서울 마포·노원구와 경기 과천시 등의 반발은 갈수록 거세다. 정책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데다 '주거'만 강조된 탓에 삶의 질에 관한 도시계획은 실종됐고 원주민이 또 희생됐다는 주장이다.
4일자로 8·4 대책이 발표된 지 두 달째을 맞이했으나 정부에 대한 마포구청과 의회, 상암동 주민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8월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2028년까지 수도권에 26만호의 아파트를 추가 공급키로 한 것인데, 여기서 핵심은 마포구 상암동 서부면허시험장 부지, 노원구 태릉골프장 등 신규 택지에 13만여호 집을 짓는 계획이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는 즉각 반발했다. 마포구는 가뜩이나 생활 인프라가 적고 교통난이 잦은 상암동인데, 정부가 대안도 없이 6200세대 규모의 주택을 또 만든다고 난리다. '주거 우선' 정책 탓에 10여년간 상암동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된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조성 계획 등 도시개발 전략도 뒷전으로 밀렸다는 말이다.
9월29일 정부가 발표한 '8·4 부동산대책'에 반대하는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주민들이 마포구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상암동 주민들은 정부에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매일 조를 짜서 마포구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일 정도다. 한 주민은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결국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무턱대로 상암동 등 비강남지역에 주택만 늘릴 게 아니라 업무시설과 일자리를 만들어 강남 집중 분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주민은 "현재 상암동의 월드컵 1~12단지에 약 1만2000세대가 사는데, 정부는 월드컵 7단지 부지와 비슷한 면적에 6200세대가 살 집을 짓겠다고 한다"면서 "그 좁은 땅에 '초고층 고시원'을 만들 셈이냐"라고 꼬집었다.
최은하 마포구의회 의원도 <뉴스토마토>와 만나 DMC 취지와 무색하게 주택만 늘어나는 건 도시 과밀화와 낙후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공공 임대주택이 생긴다고 해서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인프라가 부족한 동네에 도시발전 계획은 없고 빽빽하게 집만 지으면 결국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면서 "주민들은 임대주택이 아니라 타워팰리스가 온다고 해도 반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수도권에 총 13만2000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8·4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서울 노원구 소재 태릉골프장 일대엔 1만호 규모의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뉴시스
반발은 마포구만이 아니다. 노원구 태릉골프장엔 1만호의 주택이 들어서기고 했으나 그린밸트가 해제된 후 업무시설이 아닌 주거시설만 운집하는 것에 관한 주민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노원구 관계자도 "주거와 업무가 융화된, 서울 동북부의 랜드마크로 개발할 수 있는 부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꼴"이라고 하소연했다.
과천시 역시 정부 대책 발표 직후 주민들이 비대위를 꾸렸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8월 중순부터는 아예 시청 앞에 천막 집무실까지 꾸려 대정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 시장은 지난달 1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만나서도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이 수립될 수 있도록 경기도에서도 함께 노력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주민들은 정부 정책을 철회시키기 위한 행정소송 등 집단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분위기다. 마포·노원구청장과 과천시장,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어서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