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의 피해자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가 법정에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보낸 편지에 대해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것을 "검찰과 언론의 합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박진환 부장판사 심리로 6일 열린 채널A 이동재 전 기자와 백모 기자의 강요미수 혐의에 대한 3차 공판에서 이철 전 대표는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전 대표는 이 전 기자로부터 5차례에 걸쳐서 편지를 받았다. 첫 번째 편지 내용이 사실과 달라 무시했다는 이 전 대표는 두 번째 편지부터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이 전 대표는 첫 번째 편지에 대해 "편지의 내용이 일단 사실관계가 달라서 황당했다"며 "보낸 사람이 기자라고 하는데, 신원이 확실한지조차 궁금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제가 형을 받고 언론에 보도가 돼 이상한 편지가 많이 오고,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아 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며 "그래서 변호사에게 이 내용을 보여주고, '기자가 맞는지 모르겠다', '내용 자체가 황당하다. 소설 같다'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번째 편지를 받고 나서는 "검찰이 목적을 가지고 수사하면 피할 방법 없기 때문에 그러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안다"며 "또다시 그런 구렁텅이 빠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이 전 대표는 편지에서 거론된 검찰의 수사가 자신이 목표가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정관계 인사를 얘기하고, 신라젠 주식을 얼마나 받았는지, 서울남부지검이 본격적으로 수사한다는 등의 내용이 총체적으로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는 서울남부지검이 코스닥 상장사 신라젠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하고, 밸류인베스트먼트 관계자가 다시 조사받을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또 이 수사로 이 전 대표가 타격을 입고, 가족 재산까지도 조사할 수 있을 것이란 내용도 포함됐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세 번째 편지에 대해서도 이 전 대표는 "전체 맥락과 내용이 검찰의 수사 방향과 의지라고 판단했다"며 "전체적으로 공포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이 전 대표는 이 전 기자가 검찰 고위층을 언급하면서 수사에 협조하라고 종용하는 내용의 네 번째 편지에 대해서는 "가장 큰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 편지"라면서 "대충 어떻게 내가 이용당할지,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전반적으로 다 느낄 수 있어 공포감이 극대화됐다"고 말했다. 또 "허언이 아니라 치밀한 시나리오나 각본이 준비됐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면서 편지의 내용이 실행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발언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이동재 기자가 언급한) 검찰 고위 인사가 한동훈 검사장이라고 놀랐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 전 대표는 "서울남부지검장 정도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위 검사였고, 상상력의 한계였다"며 "그것을 뛰어넘어 한동훈 검사장이란 얘기를 듣고 아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찬호 검사장이 제1차 사건 수사에서 기소한 부장검사였고, 계속 기억하고 있다"며 "승진할 때마다 한 검사장이 같이 있었고, 그 옆에 있던 한 검사장이 나왔으니 거의 패닉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이 기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나'라는 검사의 질문에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고, 그 과정이 너무 힘들 것 같아 이후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진술할 때까지 진술조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가 불이익을 가할 주체라고 생각한 것보다 검찰의 뜻을 이 기자가 전해줬다고 생각한다"며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저는 어떤 형태로든 처벌을 받거나 그 과정에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사실이 아닌 진술을 받아 유력 정치인을 포토라인에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는 '누구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인가'란 재판부의 물음에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사기 집단에 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에서 그런 것을 듣고 있고, 언론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또 '누가 불이익을 가할 것처럼 느꼈나'란 질문에는 "검찰과 언론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했다"며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 전 기자와 백 기자는 수감 중인 이 전 대표에게 지난 2월과 3월 '검찰이 앞으로 피해자 본인과 가족을 상대로 강도 높은 추가 수사를 진행해 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란 취지의 편지를 여러 차례 보내는 등 협박해 신라젠 수사와 관련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비리를 진술하도록 강요했으나,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전 대표는 신라젠의 대주주였다.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7월17일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