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어떤 이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1920~1955)가 재즈사에 미친 영향은 광대했다. 194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비밥’의 창시자. 춤추기 좋은 스윙과 빅밴드의 시대는 파커 이후 막을 내렸다. ‘야생 날개짓’처럼 빠른 그의 코드 체인지와 즉흥 연주는 당대 주류 재즈 문화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켰다.
‘파커 전문가’ 케빈 해리스 버클리 음대 교수는 지난해 내한 당시 본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수면(재즈계)에 던져진 큰 바위’에 비유했다. “화성과 리듬을 완전히 재정의한 인물이기에 재즈는 파커 전과 후로 나뉜다”고도 덧붙였다.
‘야드 버드’란 별명의 이 재즈계 전설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음악계 전반이 위축된 상황이나, 파커를 되새기는 물결은 지금 세기를 건너 지구 전역을 뒤덮고 있다.
매년 파커의 생가가 있는 뉴욕 톰슨스 스퀘어 파크에서 열리던 ‘찰리 파커 재즈 페스티벌’ 행사는 올해 8월 지난 행사 영상을 돌리며 지구 곳곳 관객들과 그의 음악적 자취를 되밟았다. 세계적 트럼펫터 윈튼 마살리스는 내년 2월 뉴욕 링컨센터의 역사적 재즈클럽 ‘디지스’ 대면 공연을 위해 최근 링컨 센터 재즈 오케스트라(JALC) 단원들과 뭉쳤다. 영국, 일본 등지에서도 비대면 공연, 헌정 음반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흐름이 활발하다.
색소포니스트 다니엘 고(완쪽)와 남유선. 사진/플러스히치
코로나19와 분투하는 이 세계적 ‘파커 추모’ 열기에 국내에서도 연주자들이 승선한다. 오는 18일 오후 3시, 6시 두 차례에 걸쳐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 폼텍웍스홀에서는 파커의 음악을 오리지널과 편곡, 두 가지 버전으로 볼 수 있는 공연이 열린다. 기획사 ‘플러스히치’가 파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Charlie Parker@100’이다.
캐나다의 알토 색소포니스트 다니엘 고와 한국 알토 색소포니스트 남유선이 파커 역을 1부 ‘Old’와 2부 ‘New’로 나눠 번갈아 맡는다. 이들에게 파커는 ‘인스트루멘탈 재즈(악기 연주 중심 재즈)’의 성경과 같은 입지전적 인물. 5일 서울 양재역 인근에서 만난 두 사람은 “‘버드’가 왜 그 시대에서 끝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는 뮤지션인지, 그 의미를 탐험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공연 의미를 짚었다.
“파커와 동시대를 살았던 몇몇 분들은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드러머 로이 헤인즈는 95세인 지금도 연주 활동을 하세요. 우리 시대와 완전히 다른 먼 과거의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죠.”(다니엘)
알토 색소포니스트 다니엘 고. 사진/플러스히치
1부 ‘Old’ 무대에 오르는 다니엘씨는 제이슨 팔머(트럼펫터), 가드윈 루이스(알토 색소포니스트) 등과 세계 무대에 서온 연주자다. 최근 가드윈 루이스의 솔로 연주 파트가 ‘그래미어워즈’ 후보(노미네이션)에 제출된 것을 보며 감격스런 마음이 들었다고. 정통 재즈를 연주해온 그는 “재즈는 다양한 연주자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러운 장르”라며 “함께 연주하는 것은 영혼이 뒤섞이고 시대를 넘어서는 경험이다. 이번 파커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최대한 파커의 정통 연주법에 가까운 소리를 구현한다. 비밥(대표곡 ‘Be-Bop’)을 필두로 발라드(‘Lover man’, ‘My Old Flame’)와 블루스(‘The Hymn’) 등 다층적으로 뻗어있는 파커의 대양 같은 음악 세계를 조망한다.
뉴욕 본토에 가까운 소리를 위해 그는 아예 파커의 영혼을 몸에 심기로 했다. 60년 이상 된 ‘부틀렉 앨범(팬들이 몰래 마이크와 테이프를 이용해 녹음한 음원)’과 폴 데스몬드와 한 생전 인터뷰(1954년)를 돌려가며 그를 ‘복기’ 하는 데 열중이다.
“하루 11~14시간의 무시무시한 연습량을 축적해 비밥을 만들었죠. ‘내 연주는 나만이 할 수 있다’던 그 솔직함을 사랑해요. 물론 제 연주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글쎄요... 살아계셨다면 제게 호통을 치실 수도 있겠네요. 하하.”
모든 곡들을 파커식 그대로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곡으로 알려진 ‘April in Paris’ 와 ‘Repetition’의 경우 연주자 개개인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쿼텟 편곡을 선보인다. 심규민(피아노), 숀 드래빗(베이스), 김민찬(드럼)이 리듬 파트를 맡는다.
알토 색소포니스트 남유선. 사진/플러스히치
2부 ‘New’ 무대에 오르는 남유선씨는 ‘파커가 살아있었다면 가능했을’ 음악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김은영(피아노), 전창민(베이스), 송준영(드럼)이 리듬파트를 맡는다. 전자음악계에서 주로 쓰는 ‘에이블톤 라이브’를 활용해 파커의 오리지널 곡들을 재해석한다. 원곡의 짜임새 있고 완벽한 화성을 분해, 재조립하느라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색소폰 사운드의 텍스쳐를 변형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리를 찌그러뜨리거나 공간감을 풍성하게 하거나. ‘아방가르드 프리 재즈’ 스타일을 기대해주세요.”
버클리음대와 뉴욕대 출신인 남씨는 국내 알토 색소포니스트 대표 주자로 꼽히는 정통 재즈뮤지션이다. 뉴욕에서 오래 생활해온 그는 “미국에서도 재즈의 다운되는 흐름에 반해 최근에는 현대적으로 콘셉트 이미지를 만드는 ‘리이슈’ 현상이 화두”라며 “이번 공연으로 한국에서도 파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을 여행지에 빗대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물었다.
“파커의 삶이 이야기처럼 흐르는 장소. 음악적인 것부터 일상의 태도까지도요. 15살 교통사고로 허리가 끊어진 뒤에도 치열하게 연주해온 그를 말해주고 싶어요. 왜 그가 살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싶어했는지.”(다니엘 고)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찰리 파커…. 모두 과거에서 끝나지 않은 음악가들이죠. 저는 ‘후대에 정신적,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냐’가 음악가들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파커의 비밥이 왜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왜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해요.”(남유선)
찰리파커 공연 포스터. 사진/플러스히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