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폭언 등 입주민의 지속적인 악성 민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온 아파트 관리소장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인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의 요인에 겹쳐서 우울 증세가 유발·악화했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따라서 A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앞서 A씨는 경남 양산시에 있는 한 국민임대아파트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하던 지난 2017년 7월20일 회사 대표에게 사직하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후 다음 날 아파트에 출근하지 않았고, 그달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2018년 7월23일 "A씨가 업무적 스트레스에 의해 판단력 망실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개인의 경제적 문제, 정신적 취약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죽음에 이른 것으로 판단한다"며 부지급 결정으로 처분했다. A씨의 유족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가 재심사 청구도 기각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 입주민 B씨는 같은 해 5월부터 근무시간이 아닌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시간에 A씨의 휴대전화로 연락해 언성을 높여 층간소음 문제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A씨가 대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당일에는 1시간 동안 공개된 장소에서 A씨에게 일방적으로 질책과 폭언을 했다. A씨 유족에 따르면 A씨는 퇴근 후 다음 날까지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고, 잠도 자지 못하면서 계속 불안감으로 호소했다.
재판부는 "B씨가 A씨보다 나이가 10살 적은 점, A씨의 잘못이 아니라 LH의 업무 처리에 관한 문제를 A씨에게 항의한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이와 같은 사건은 A씨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의 경과를 살펴보면 결국 2017년 7월20일 B씨의 민원 제기가 A씨의 사망 전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과거 공황장애 치료를 받은 개인적 소인이 있기는 했지만, 2006년 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사이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은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따라서 A씨가 2017년 7월 정신건강의학과에 2차례 내원해 치료를 받았고, 그런데도 급격히 불과 우울장애 증상이 심화해 사망에 이른 경과에 비춰 보면 그 무렵 상당히 증가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개인적 소인의 발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사진은 서울행정법원. 사진/서울행정법원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