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임 담합 조사만 3년째…해운사 옥죄는 공정위

공동행위 여부 조사중…20년치 운임 자료 제출 요구
정부 해운재건 기조에 어긋나…"경쟁국 보복 우려"

입력 : 2020-10-20 오전 6:05:42
[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공정위의 해운사 운임담합 조사는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겁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데 운임담합 의혹에 운항 서비스에 영향이 미칠까 걱정입니다" 
 
최근 만난 해운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7월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가 동남아 항로 해운사들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신고에 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목재업계는 해운사들이 일제히 운임회복비용(ECR)을 올려 청구했다며 운임 담합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같은해 12월 공정위는 현대상선(현 HMM(011200)),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003280)과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동남아항로)를 대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공정위는 해운사들이 운임 인상을 위해 공동행위를 했는지 여부에 집중하고 있다. 
 
ECR은 해운업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최소한의 경영활동을 위해 도입된 조치다. 그간 선사간 경쟁 심화로 치킨게임이 벌어지면서 운임을 인상할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업계는 ECR 청구를 운임 인상이 아닌 '정상화'라고 표현한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진/뉴시스 
 
게다가 해운법에선 해수부장관 신고를 전제로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운임 등의 협약을 다룬 현행 해운법 제29조1항엔 '선사간 운임·선박 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런 가운데 당초 운임 담합 의혹을 제기한 목재업계는 지난해 8월 관련 조사 요청을 철회했다. 목재업계가 해운사 선처 탄원서까지 직접 공정위에 제출했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선사의 공동행위가 위법사항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조사 범위가 해운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공정위는 동남아 항로 외에도 황해정기선사협의회(한중항로), 한국근해수송협의회(한일항로)까지 범위를 넓혔다. 국내 국적선사뿐만 아니라 외국적선사까지 총 25개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20년치 운임 자료를 요구하고 선사 실무진들까지 불러 조사했다. 
 
공정위 조사가 햇수로 3년째다. 그사이 운임은 곤두박질쳤다. 당시만 하더라도 베트남 하이퐁 수출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당 100달러였지만 현재는 20달러로 급락했다. 화물을 운반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지경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운법에서 해운사의 공동행위를 불공정행위로 보지 않고 있다"며 "산업에 대한 특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담합이라고 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사진/HMM
 
공정위의 이같은 조치는 해운재건에 나선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반대된다. 정부는 2016년 한진해운을 잃고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세우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해운재건 정책의 일환으로 국적선사 HMM이 국내 조선 3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042660))에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했고 지난 2분기부터 투입된 2만4000TEU급 12척은 모두 만선 출항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공정위는 해운사 때리기에 화력을 쏟는다. 
 
특히 공정위가 해운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후폭풍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 선사와 경쟁당국이 국내 공정위의 역외적용에 대해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국내 해운사가 그저 과징금 부과를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쟁국들의 보복으로 국내 해운업의 경쟁력은 약해지고 이 틈을 노려 외국 선사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질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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