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아동을 이용한 음란물을 구입해 소지한 20대가 법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범행 자백'과 '반성'이 양형 이유다. 디지털성범죄의 잔혹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센 가운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박용근 판사는 11일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음란물소지)으로 기소된 문모(23)씨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재범 예방 강의 40시간 수강에 사회 봉사 120시간도 아울러 명령했다.
재판부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소지 행위는 음란물의 제작행위 및 제작 과정에서 벌어지는 아동·청소년의 성착취 행위에 대한 유인을 제공함과 동시에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다른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 비난가능성이 크고, 이를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이 소지한 음란물의 수가 많고, 대가를 지급하고 이를 구매해 그 죄질도 좋지 않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음란물을 구입해 이를 다시 유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에게 아무런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한다"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아동 성 보호 관련 인식이 미흡했다”며 “미국에선 관련 영상물을 보관만 해도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그간 판매자는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는 데 비해 구매자는 벌금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재판부가 국민 법감정에 따라 형량을 갑자기 늘릴 수는 없는 점을 고심해 실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법원의 성범죄 선고 경향을 볼 때 2심에서 형량이 무거워 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곽 변호사는 “기존 사건은 대법원에서 가장 보수적인 판결이 나오는 반면 요즘 성범죄 사건은 그렇지 않다”면서 “1심이 기존 판례를 유지한다면 2심은 진보적이고 대법원은 더 엄해지는 분위기여서 2심 때는 다른 처벌이 내려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번 재판에서 관심을 끈 또 다른 부분은 문씨의 신상정보 공개 여부였다. 현행법상 아동·청소년 음란물임을 알면서 소지한 자의 신상정보는 관할경찰서에 등록하게 돼 있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신상정보를 일반에 공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올해 5월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량에 따라 신상을 일정 기간 공개하도록 한다. 기존 조항은 공개 기준을 ‘성폭력’에 한정했다. 바뀐 조항은 이달 20일 시행된다.
문씨는 지난해 8월 n번방 운영자 신모씨(대화명 켈리)가 트위터에 올린 ‘희귀영상 레어전문’ 게시물을 보고 텔레그램으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구입했다. 신씨는 '갓갓' 문형욱으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았다.
문씨는 신씨에게 5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 핀번호를 전송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씨가 이를 대가로 휴대전화에 내려받은 음란물은 2254개에 이른다. 해당 음란물은 올해 1월 초까지 보관된 것으로 드러났다.
n번방 최초 개설자인 일명 '갓갓' 문형욱(24)이 지난 5월18일 오후 경북 안동경찰서에 마련된 포토라인에서 "피해자들에게 죄송합니다"고 말한 뒤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