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호텔에 머무는 일부 시설 자가격리자들이 새벽 심부름부터 쓰레기 투기까지 ‘갑질’을 일삼으며 호텔 직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28일 서울의 한 호텔 다수의 직원들에 따르면 이 호텔은 반 년째 해외에서 귀국했거나 밀접접촉자 중 자택에서 머물 상황이 안 되는 자가격리자를 대상으로 시설 자가격리를 실시하고 있다.
호텔 직원들도 기존 고객들과 달리 감염 우려가 높은 상황이지만,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방역을 철저히 하고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고객 응대에 나서고 있다.
체크 인 이후 체크 아웃까지 자유로운 평소 호텔 이용과 시설 자가격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시설 자가격리가 이뤄지는 동안 다른 고객은 받을 수 없고, 자가격리자의 지인·친구·가족 등도 접촉할 수 없다.
시설 자가격리는 체크 인 과정에서 자가격리자 관할 자치구 확인을 거치며, 식사나 필요물품을 호텔 직원들이 객실 문 앞에 갖다 놓는다. 자가격리자는 체크 인 이후 자가격리 해제 시까지 코로나19 검사를 제외한 객실 밖 출입은 제한된다.
베드 교체나 객실 내 물품 교체도 일정 부분 제한되기 때문에 체크 인 시 미리 지급하는 등으로 보완하고 있다. 식사도 식성이나 요청에 따라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등으로 대체 지급하지만 아무래도 평소 호텔식단이나 외부 음식에는 못 미칠 수밖에 없다.
한 자가격리자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자가격리하면서 세면대에 흡연한 흔적. 사진/호텔 직원
하지만, 약 2주간 외부 접촉 없이 모든 필요사항을 호텔 직원들에게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부 자가격리자들이 자가격리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직원들에게 분출하고 있다.
배달앱 등으로 정상적으로 로비에 전달되는 물품은 직원들이 객실 앞까지 전달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커피전문점 구매대행, 편의점 구매대행 등 도를 넘은 심부름까지 온전히 직원들의 몫이다.
A 직원은 “배달이 되지 않는 순대국밥을 사다 달라거나 배달앱 최소주문금액이 안되는데도 무작정 우리에게 떠넘기는 경우는 예사”라며 “비아냥대거나 고성으로 통화하는 일도 자주 있으며 깐깐하게 응대하거나 거절할 경우 이름을 되묻거나 온라인 민원을 제기한다며 압박한다”고 말했다.
다수의 자가격리자가 소수의 직원들에게 24시간 대면하지 못한 채 전화나 온라인으로만 요청사항을 쏟아내기 때문에 악성 요청이나 고객과의 마찰이 하나둘만 쌓여도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강도가 커지기 마련이다.
호텔업계 종사한 지 10년이 넘은 B 직원은 “우리(직원)들끼린 우린 욕 먹는 사람이라고 그냥 자조적으로 얘기하고 만다”며 “모욕감같은 걸 자주 겪으니 안 생기던 피부 트러블이 생기고 근무 피로도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직원 C씨는 “와이파이를 위한 에그를 이미 정상적으로 지급했는데도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된다고, 속도가 느리다고 트집을 잡아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 곤란케 했다”며 “절차상 요청하는 쓰레기 배출도 거부하며 힘들게 하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직원 D씨는 “어떤 자가격리자는 안에만 있기 갑갑하다고 뛰쳐나와 볼 일이 있다며 탈주하려 시도해 직원들이 겨우 겨우 설득한 경우도 있다”며 “그런 일이 수차례씩 반복되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친다”고 말했다.
한 자가격리자가 지난 10월 서울의 한 호텔을 퇴소하면서 남기고 간 쓰레기 더미. 사진/호텔 직원
한 자가격리자가 지난 10월 서울의 한 호텔을 퇴소하면서 남기고 간 쓰레기 더미. 사진/호텔 직원
지난 10월에 해외에서 입국한 40대 남성 자가격리자는 자가격리기간 2주 내내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 술을 사달라는 등 유난히 직원들과 잦은 마찰을 빚은 이 자가격리자는 금연인 객실 안에서 흡연을 일삼았다. 자가격리 해제를 앞두고는 2시간 일찍 객실에서 나와 퇴소를 시도했다.
결국 한 직원이 이 자가격리자를 설득하고 설득해 2시간 동안 때 아닌 면담까지 진행해 정해진 자가격리 시간을 채운 후에야 퇴소 조치했다. 특히, 이 자가격리자가 머물던 객실은 침대 위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이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이날 객실을 치운 직원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조기퇴근해야만 했다.
다행히 대다수의 자가격리자는 직원들에게 협조적이다. 퇴소하며 직원들에게 감사메시지를 남기기도, 객실 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직원들에게 미소를 안기기도 한다. 한 자가격리자가 가족을 통해 전달한 음료수는 야간근무를 하는 직원들에게 작은 휴식이 되기도 한다.
한 직원은 “정말로 무단이탈하는 경우에야 경찰이나 보건소 등에 연락해 조치를 하지만 그 전까진 직원들에게 강제로 통제할 방법도 권한도 없다”며 “일반 호텔 이용이 아니라 시설 자가격리로 이뤄지는 만큼 불필요한 마찰을 막을 가이드라인 같은 거라도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