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반도체 글로벌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중심축으로 불리는 SMIC(중신궈지)가 올해 5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밝히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MIC은 지난 4일(현지시간) 2020년 4분기 실적발표 후 올해 8인치·12인치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증설한다고 밝혔다.
올해 투자규모는 43억달러(4조8000억원)로 잡았다. 투자금은 주력제품 생산시설 확충에 투입되며 일부는 미세공정 반도체 기술개발과 베이징 합작 프로젝트 등에 쓰일 예정이다.
SMIC는 중국 1위, 세계 5위 파운드리 업체다. 8인치와 12인치 생산라인을 운영하며 55나노미터, 65나노미터, 0.15마이크로미터, 0.18마이크로미터 공정이 주력 제품이다. 지난 2019년 14나노 공정을 상용화 했고 최근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속에 12나노미터 양산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MIC의 공동 CEO를 맡고 있는 자오 하이준과 리앙 멍송은 "파운드리 생산능력(캐파)이 타이트하고 성숙공정(28nm 이상)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며 "고객들의 공급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능력을 늘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로고/SMIC
SMIC가 설비 증설에 투자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반도체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지만 업계는 증설 이유가 미국의 제재에 대비하는 동시에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미국 국방부는 SMIC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국 기업이 SMIC에 반도체 기술과 장비를 공급하면 중국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SMIC에 수출하려는 기업들은 제품별로 상무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이어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까지 제재를 강화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기술 육성을 막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SMIC에 보조금, 세제 혜택 등을 주며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시 정부는 12나노미터 선진공정이 적용된 반도체를 대량 양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느 기업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는 미세공정 프로젝트를 SMIC가 맡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미세공정 프로젝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SMIC이 생산하는 반도체는 첨단 기술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매출 중 내수업체 비중이 70%에 이르는 것을 보면 제품 신뢰도나 기술력이 높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다 보니 SMIC의 투자 계획이 공급능력 늘리기 위해서라기보다 대외적인 과시에 초점을 맞춘 것이란 게 업계의 의견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SMIC가 아무리 기술개발을 한다고 해도 인텔이나 애플이 SMIC에 위탁물량을 발주하지 않을 것"이라며 "거의 내수로만 매출을 내는 업체가 생산라인에 대규모 투자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제재에도 반도체 사업을 축소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