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096770)이 2년 넘게 벌여온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영업비밀 침해 분쟁에서 LG가 최종 승소하면서 공은 이제 SK로 넘어가게 됐다. ITC 결정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거나, SK가 결정에 불복,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판결 결과 효력이 발생하는 2달 남짓 남은 기간동안 SK가 LG와 의미있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SK의 미국 내 사업은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LG와 SK의 배터리 전쟁의 본사건 격인 ITC 영업비밀 침해 분쟁에서 LG가 최종 승리하면서 SK의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ITC는 향후 10년간 SK의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 부품에 대한 미국 내 생산·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또 SK와 공급계약을 맺은 포드와 폴크스바겐에 대해서는 각각 4년과 2년의 수입금지 유예기간을 줬다.
◆ITC 최종 결정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
SK가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ITC 최종 결정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ITC 결정은 우리나라 행정심판과 유사해 미 대통령의 심의와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검토 기간은 60일로 지난 주 판결 이후 사흘이 지난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남은 57일간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다만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공정경쟁 등 공공의 이익에 반할 경우에 한정되는데, 이때 LG와 SK 소송전은 미 무역대표부(USTR)로 회부된다. 현재 SK는 25억 달러(한화 약 3조원)를 투자해 미국 현지 조지아 1·2 공장 운영하며 약 2600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전기차 산업의 미래를 고려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나 지적재산권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밝혀왔던 만큼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영업비밀 침해 건에 대해 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역사상 단 한 건도 없었다.
◆ITC 최종 결정 불복…SK의 항소 가능성
SK는 ITC 결정에 불복해 항소할 여지도 있다. ITC는 최종 결정문에 "SK가 LG의 정보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조직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이뤄졌다"고 명시했지만 SK는 ITC가 핵심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해 아쉽다며 유감 입장을 표명했다.
SK는 지난해 2월 ITC의 SK 조기패소 판결 이후 즉각 이의 신청을 제기했고 이후 재검토가 결정됐던 것처럼 미 대통령의 검토 기간이 끝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항소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소송건에 대해 연방순회항소법원이 심리를 맡고 연방대법원이 확정한다. 다만 항소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ITC의 수입금지 및 영업비밀 침해 관련 판결 효력은 지속되고, 결정까지 약 2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SK의 항소는 자사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 이후 ITC 최종 결정에서 수입금지 명령이 나온 영업비밀 침해 소송 총 6건 중 5건이 항소를 진행했지만 결과가 바뀐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
◆민사소송 시작 전까지 LG·SK 대승적 합의가 최선
ITC 최종 판결에 따라 SK는 협상의 열세에 놓였다.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하게 된 LG는 "영업비밀 침해 최종 결정을 인정하고 소송전을 마무리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길 기대한다”며 SK를 압박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주어진 심의기간 동안 SK가 잠재적 합의금 명목으로 법원에 공탁금을 내면 ITC 명령의 효력은 일시 중단된다. 이 기간 중 합의가 이뤄지면 수입금지 조치 등 SK 현지 공장 가동에 아무 영향이 없다.
관건은 합의금 규모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결정될지에 달렸다. 업계에 따르면 LG는 미 연방 영업비밀보호법(DTSA)에 따른 산정 기준을 적용해 3~6조 정도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지만, SK 측은 5000~8000억원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양사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델라웨어 연방법원의 민사소송으로 이어지게 되고 소송은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장승세 LG에너지솔루션 경영전략총괄 전무는 지난 11일 컨퍼런스콜을 통해 "우리는 줄곧 미국 영업비밀보호법에 따라 기준을 가지고 협상해왔다"며 "지급 방식 등의 각론에 앞서 우선 총액이 어느 정도 눈높이가 근접해야 추가 논의가 가능한데, 최종 판결이 나온 만큼 총액 수준의 눈높이가 맞으면 지급 방법에 대해서는 쉽게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SK가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임해온 만큼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3의 중재인이 나서서 양사간 합의를 조율하는 대안에 대해서 LG는 강경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ITC 판결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만큼 당사자간 합의가 중요하고, 제3자가 개입시 추가로 발생하는 시간이나 비용 문제에 대한 난점 등을 고려했을 때 합의 도출이 오히려 쉽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