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코로나 팬데믹이 1년이 넘어가는 시점, 세계 음악계는 새로운 돌파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행사 자체를 취소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각 음악 축제들이 '비대면 순항'의 돛을 달고 나아가는 분위기다.
지난 14일(현지시간) '63회 그래미어워즈'는 한 차례(1월31일) 연기 끝에 무사히 막을 내렸다. "수백명의 음악산업 공동체 구성원들 건강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를 구호로 걸고 최소 규모의 대면과 비대면을 혼배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글래스톤베리, 코첼라 등 수만명 규모의 페스티벌은 아직 정상개최가 요원하지만, 비대면 병행이 가능한 음악 시상식, 컨퍼런스 등의 행사들은 그래미에 이어 조심스럽게 재개되는 분위기다.
오는 16일(현지시간)부터 20일까지는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가 열린다.
2018년 'SXSW' 무대에 선 세이수미(Say Sue Me)의 무대.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음악, 영화, 인터렉티브 미디어, 컨퍼런스, 미디어 산업 등을 망라한 세계 최대 규모의 콘텐츠 축제다. 1987년부터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려왔으나,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 개최를 확정했다.
지난해 3월 행사는 갑작스런 코로나 확산으로 행사를 취소한 전례가 있다. 1년 간의 '경험적 학습' 끝에 올해 비대면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한다.
특히 이 행사의 음악 분야는 연 평균 50여개국 2만여명의 음악관계자들, 2000명의 뮤지션이 참석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주로 세계적 뮤지션 도약을 위한 '교두보'가 돼 왔다. 2006년 에이미와인하우스, 악틱몽키스를 비롯해 케이티 페리, 본 이베어, 그라임스, 빌리 아일리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데뷔 초 이곳에서 쇼케이스를 거쳐갔다.
실제 오스틴 대면 행사에선 주로 200여 관객 남짓한 관객 앞에 서왔지만, 올해는 지구촌이 대상이다. 세계 곳곳에 암약하는 '울트라 음악 마니아들'이 이 가상세계에 접속한다.
안방 1열에서 팝콘과 함께 '미래의 빌리 아일리시'를 관람한다. 코로나 '탓'이라 해야할지, 음악 축제의 '뉴노멀'이 성큼 다가온 셈이다.
행사 첫날인 16일(현지시간) 윤석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 글로벌 CEO는 특별 연사로도 나섰다.
그는 이날 빅히트와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성공에 대해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관련 "지금껏 일궈 온 성취를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에 없던 산업과 기술을 창조하겠다"며 "문화와 삶을 진보시킬 더 많은 음악계 '뉴 노멀'이 나타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빅히트의 미래 비즈니스는 음악을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한 서비스가 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잠비나이. 사진/Kang sang woo
흔히 아이돌 중심의 K팝이 아닌, 한국의 장르 뮤지션들에게도 SXSW는 '기회의 땅'으로 인식돼 왔다. 넬, 크러쉬, 혁오, 세이수미, 잠비나이, 새소년 등이 그간 이 무대를 발판 삼아 해외에 닿았다.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가능성은 더 열리게 됐다.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 대금 연주자 백다솜을 비롯해 드비타, DJ 웨건, 로코, 세이수미, 소금, Woo, 해파리, 애리, Y2k92, 텐거 등이 온라인 사전 제작 영상으로 세계 팬들, 음악 관계자 앞에 선다.
이중 잠비나이와 백다솜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한국예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예술 해외 홍보 컨텐츠 제작 지원사업' 일환으로 참여하게 됐다. 잠비나이는 전날 이미 스트리밍으로 쇼케이스를 마쳤다.
김형군 잠비나이의 소속사 더텔테일하트 디렉터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해외 음악 산업 관계자들과) 채팅창으로 즉석 질문과 답변, 기존의 영상 링크를 주고 받는 행동들이 빠르게 오갔다"며 "현장에서의 불필요한 의식들이 소거돼 효율적으로 느꼈고 대면 때와 비교해 결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현장에서 몸을 부대끼며 느껴지는 '따스함'은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웠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쇼케이스 이후, 잠비나이는 북미 음악 산업 종사자 측으로부터 올해 9월 잠비나이의 미국 투어 일정을 잡자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김 디렉터는 "9월 투어는 불가능할 것 같다. 국내외 코로나 상황이 안정화된 후에 진행할 것"이라며 "북미 음악산업 종사자 중 상당수가 올해 안에 정상화 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지만, 저를 포함한 멤버들은 동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해파리(Haepaary). 사진/플립드코인뮤직인스타그램 캡처본
주식회사 알프스(ALPS)의 브랜드인 음악콘텐츠 에이전시 '플립드코인뮤직(Flippedcoinmusic)'은 올해 해파리, 애리, Y2k92, 텐거 등 한국 음악계 숨은 '보석들'의 출연을 돕는다.
특히 해파리는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의 선율을 앰비언트와 테크노 기반의 음악으로 해석하는 팀이다. 텐거는 피치포크, BBC 등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이수정 알프스 이사는 전화통화에서 "대면으로 가려면 비행기 티켓부터 비자 발급, 호텔과 베뉴 대관 등 수개월 전부터 비용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돼 준비가 수월했다"며 "한국 얼터너티브(대안) 음악의 우수성을 현지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