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시대의 귀환③)LP, 한국 대중음악사 명맥을 잇다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대표 인터뷰
“지난해 하반기 기점, LP 거대 현상으로”

입력 : 2021-03-26 오후 4:42:04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턴테이블 바늘과의 마찰로 ‘톡톡’ 튀는 소리가 나는 지름 30㎝의 원형판. ‘LP(바이닐)’.
 
지금 전 세계 레코드 매장에서는 둥근 판들의 주도로 ‘아날로그 반격’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한해 동안 LP 매출액은 1986년 이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CD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도 90년대 브릿팝 붐 이후 LP 판매 증가량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기록됐다.
 
디지털 이행이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이는 시대의 ‘역설’. 유튜브 음악 감상이 보편화된 반대 세계에는, 굳이 불편하게 판을 뒤집으며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뉴스토마토 참고 기사, 34년 만에 CD 추월한 LP…‘아날로그의 반격’ ]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모던록 수상작으로 뽑힌 조동익 '푸른 베개'가 최근 LP로 출시됐다. 사진/마장뮤직앤픽처스
 
“지난해 하반기 기점, LP 거대 현상으로”
 
조동익 ‘푸른 베개’, 이날치 ‘수궁가’, 선우정아 ‘Serenade’, 백예린 ‘Every letter I sent you’. 올해 2월 ‘제 18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네 개의 음반은 지난해 모두 LP로 제작됐다. 특히 이날치 ‘수궁가’는 ‘선 LP 발매 후 CD 제작’의 특이 사례로도 음반업계에서 큰 이목을 끌었다.
 
네 장의 LP를 모두 제작한 LP 전문 브랜드 마장뮤직앤픽처스(이하 마장) 하종욱 대표는 최근 본지와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과거 LP라는 문화 산물을 향한 지배적인 시선은 복고, 추억과 연관된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며 “뉴트로, 20~30대의 산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마장은 상징적인 신보와 명반 재제작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일 국내 클래식 음반 사상 최초로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소프라노 조수미의 ‘Only Love’를 20여년 만에 LP로 발매했다. 10일에는 장필순의 ‘reminds 조동진’ 앨범을, 24일 패닉의 1집 ‘Panic’을 LP로 내놨다.
 
하종욱 대표는 “더딘 성장의 분위기가 거대한 현상으로 바뀐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였다”며 “500장씩 주문하던 수량이 1000장으로 2000장으로 확대되고 가요와 클래식 명반의 리이슈로 제한됐던 시장이 LP 신보를 발매하는 흐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미처 숨고를 틈도 없이 하나의 타이틀이 수천장, 만여장으로 확대되고 주문량은 전년 대비 2~3배 이상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6월부터는 2교대, 야간근무라는 적극적인 대처를 해야만 하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는 “마장이 국내 유통, 소비되는 LP의 약 10% 정도를 차지한다고 가정한다면, 최근 1-2년 사이의 성장 폭은 좁게는 3배 이상, 턴테이블 보급, 중고 LP의 판매, LP 관련 상품 등을 통합한 전체 시장은 약 5배 이상 성장했다고 업계와 현장에서는 체감하고 있다”며 “LP 부활 원년의 분위기”라고 했다.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대표. 사진/마장뮤직앤픽처스
 
13년 만에 가동된 국내 LP 공장, ‘메이드 인 코리아’
 
2014년 아이유 ‘꽃갈피’ LP 제작 당시만 해도 마장은 독일 공장에 생산을 맡겼다. 그 뒤 3년 간 오랜 기간 연구에 매달렸다. 외국 공장의 사례 연구, 전문 기술자들 미팅, 자문, 협력.... 2017년 6월 마장 이름을 단 국내 LP 생산 공장의 문을 열었다. 2004년 서라벌 레코드 이후, 맥이 끊긴 국내 LP 공장이 13년 만에 가동된 것.
 
마장의 전신인 벨포닉스레이블 소속 백희성 엔지니어가 합류하면서 본격 진영이 갖춰졌다. 백희성 엔지니어는 1968년 설립된 유니버설레코드의 장비를 넘겨받고 과거 LP 산업 종사자들을 수소문 끝에 찾아가 제작기술을 전수받았다. 
 
하종욱 대표는 “부족함을 실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공장의 엔지니어들과 사무실의 직원들은 밤낮으로 공부하고, 수많은 연구와 시도를 거듭했다”고 했다. 유럽의 프레싱 기계와 도금기를 갖고 있었음에도 문제는 기계가 아닌 기술이었다.
 
“LP를 생산하는 기술과 노하우는 결국 사람, 장인입니다. 무수한 불량을 극복하면서 비로소 저희들이 찾은 기계들을 직접 만들었고, 최상의 품질이 나올 수 있는 조건값과 경우의 수를 경험과 연구 속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마장은 국내 LP 공장 두 곳 중 한 곳, 프레싱 기계 3대 중 2대를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 제일, 최대의 생산량’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해엔 클래식 음반 중 제작 수량의 절반을 일본과 홍콩에 수출하는 작은 성공도 이뤘다. LP 공장 시설의 자동화,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신축 공장의 설립, 코넥스 상장 등의 계획도 차근차근 실행 중이다.
 
지난 3일 국내 클래식 음반 사상 최초로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소프라노 조수미의 ‘Only Love’가 20여년 만에 LP로 발매됐다. 사진/마장뮤직앤픽처스
 
조동진, 어떤날, 조용필…한국 대중음악사 명맥 잇는 기획 LP
 
현재 마장은 두 가지 형태의 제작물을 내고 있다. 직접 기획하고 계약해 생산, 공급하는 기획 앨범과 LP 제작물을 단순 납품, 공급하는 임가공 생산품으로 나뉜다. 올해 3월 기준 임가공 102건, 기획 45건으로 총 147건의 타이틀을 제작했다.
 
지금까지 마장이 내온 기획 LP에는 거장들의 음반이 대거 포진돼 있다. 첫 기획 앨범부터 조동진 6집 ‘나무가 되어’다. 기발표됐던 조동진 전집(1~5집)의 LP 판권과 조동익의 ‘어떤날’ 1, 2집. 이 밖에 조용필, 김광석, 장필순, 빛과소금, 해바라기, 이문세, 신승훈 등 다수.
 
최근에는 백예린, 크러쉬, 이날치 등 장르 음악으로도 폭을 넓히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맥을 잇는 측면에서도 중요해 보인다.
 
하종욱 대표는 “아이유나 이하이 같은 아티스트의 목소리도 LP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소리일 것 같아 내심 바람을 지녀보고 있다”며 “그밖에도 김민기 선생님의 전집이나 뿌리깊은나무와 같은 국악 명반의 리이슈, 방탄소년단(BTS) 음반 등 다양한 음악을 LP에 새기고 싶다”고 했다.
 
“20~30대를 필두로 이제는 10대까지 LP를 구매하고 수집하는 특별한 현상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희가 생산하고 기획하는 음악의 수용폭도 다양한 세대, 시대정신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 대표는 “궁극적으론 해외 음악 팬들이 필요로 하는 문화 상품까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국내 아티스트 음악의 수출 뿐 아니라 해외 아티스트의 제작 의뢰가 들어오는 것도 설레는 소망일 것”이라고 했다.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대표. 사진/마장뮤직앤픽처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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